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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별빛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사랑은 고통입니다.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던 것들을 우리 손으로 허물기를 몇 번, 육신을 지탱하는 일 때문에 어둠 속에서 울부짖으며 뉘우쳤던 허물들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연약한 인간이기를 몇 번, 바위 위에서 흔들리는 대추나무 그림자 같은 우리의 심사와 불어오는 바람 같은 깨끗한 별빛 사이에서 가난한 봄들을 끌고 가기 위해 많은 날들을 고통 속에서 아파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건널 수 없는 강을 서로의 사이에 흐르게 하거나 가라지풀 가득한 돌 자갈 밭을 그 앞에 놓아두고 끊임없이 피 흘리게 합니다. 풀잎하나가 스쳐도 살을 베히고 돌 하나를 밟아도 맨살이 갈라지는 거친 벌판을 우리 손으로 마르지 않게 적시며 적시며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깨끗이 괴로워해본 사람은 압니다. 수없이 제 눈물로 제 살을 씻으며 맑은 아픔을 가져보았던 사람은 압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고통까지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살며 사랑하는 일도 그렇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도 그러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우리 몸으로 선택한 고통입니다.
도종환 시인 / 홀로 있는 밤에
이것이 진정 외로움일까 다만 이렇게 고요하다는 것이 다만 이렇게 고요하게 혼자 있다는 것이 흙 위에 다시 돋는 풀을 안고 엎드려 당신을 생각하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홀로 깊이 어두워져가고 있는 다만 이 짧은 순간을 외로움이라 말해도 되는 것일까 눈물조차 조용히 던지고 떠난 당신을 생각하면 진정으로 사랑을 잃고 비어 있는 것은 내가 아닌데 나도 당신으로 인해 이렇게 비어 있다고 내가 외롭다 말해도 되는 것일까 새로 돋는 풀 한 포기보다도 떳떳치 못하고 돌아오는 새들보다 옳게 견디지 못한 채 이것을 고독이라 말해도 되는 걸까 저 길고 긴 허공을 말없이 떨어져 어둔 땅 너머로 빗발들은 소리 없이 잠겨 가는데 빗방울만큼도 참아내지 못하면서
겨우 몇 날 몇 해 홀로 길 걷는다고 쓸쓸하다 말해도 되는 것일까 흔들리기만 하면서 흔들리기만 하면서 고독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도종환 시인 / 홍매화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을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도종환 시인 /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벚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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