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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하율 시인 / 푸른 못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1.

이하율 시인 / 푸른 못

 

 

  황급히 벗다 들킬 번개의 얼룩처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통점이다  

 

  틈새라도 있는지 넘쳐흐르지도 고이지도 않고

  맴돌던 물살이 휘발되듯 빨려가 착상했을 그곳, 틀 없는 허공

 

  여닫지 못해 늘 젖어야 하는 비의 안, 바깥이다

 

  금방이라도 튕겨질듯

  불안하던 어제가 빠져나올 때 뒤돌아보지 못한

  내가 태어나기 전 구름바람이 몸 섞은 푸른 구멍,

 

  누군가의 산화된 관절, 빗줄기

 

  바람만 드나들다 봉합한 옆구리를 건드리면

  오래 가둔 수심이 왈칵 쏟아진다

 

  뚝뚝 소리 내어 꺾으며 속살 같은 못들이 살만한  창 안을

  줄줄줄, 붉은 기억으로 기웃거리기도 하는

  온기에 고이려는 움푹한 습성,

 

  마른 파문에 빠져 가벼워지고 싶다

 

  번개 속, 우기의 처마 아래에 누워

  점점 흐려져 가는 미라가 내 어린 그림자인 것,

  알게 된 저녁에야 비로소

  가려운 손 확을 천천히 기울인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8월호 발표

 

 


 

이하율 시인

충남 홍성에서 출생. 2011년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