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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 / 시간이 사각사각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아하 사실은 (통시성의 하늘 아래서 공시성인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시간이 아삭아삭 시간이 바삭바삭 아하 기실은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최승자 시인 / 시인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이 피곤한 컹컹거림을 멈추게 해다오. 이 대열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내 심장에서 고요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나는 누워 비디오로 보고 싶다.
그리고 폐광처럼 깊은 잠을 꾸고 싶다.
최승자 시인 / 악순환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나는 독 안에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 어쩌면 그 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오 한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최승자 시인 / 어떤 아침에는
어떤 아침에는, 이 세계가 치유할 수 없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또 어떤 아침에는, 내가 이 세계와 화해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내가나를 버리고 손 발, 다리 팔, 모두 버리고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숨죽일 때 속절없이 다가오는 한 풍경.
속절없이 한 여자가 보리를 찧고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보리를 찧고, 그 힘으로 지구가 돌고 …….
시간의 사막 한 가운데서 죽음이 홀로 나를 꿈꾸고 있다. (내가 나를 모독한 것일까, 이십 세기가 나를 모독한 것일까.)
최승자 시인 / 어떤 풍경
고요한 서편 하늘 해가 지고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한 세계를 건넜던 한 사람이 책상 앞에서 시집들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가 읽는 시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어오릅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시간의 무상함
어떤 사람이 시간의 시를 읽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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