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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 / 연
연 하나 날리세요 순지 한 장으로 당신이 내거는 낮달이 보고파요
가멸가멸 올라가는 연실은 어떨까요 말하는 마음보다 더욱 먼 마음일까요 하늘 너머 하늘가는 그 마음일까요
겨울하늘에 연 하나 날리세요 옛날 저승의 우리집 문패 당신의 이름 석자가 하늘 안의 서러운 진짜 하늘이네요
연하나 날리세요 세월은 그렁저렁 너그러운 유수 울리셔도 더는 울지 않고 창공의 새하얀 연을 나는 볼래요
김남조 시인 / 연하장
설날 첫 햇살에 펴 보세요
잊음으로 흐르는 망각의 강물에서 옥돌 하나 정 하나 골똘히 길어내는 이런 마음씨로 봐 주세요
연하장, 먹으로써도 彩色(채색)으로 무늬 놓는 편지
온갖 화해와 함께 늙는 회포에 손을 쪼이는 편지
제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글씨는 없이 목례만 드린다.
김남조 시인 / 영원 그 안에선
이별의 돌을 닦으며 고요하게 있자 높은 가지에서 떨어지려는 잎들이 잠시 최후의 기도를 올리듯이
아무것도 허전해하지 말자 가을나무의 쏟아지는 잎들을 뜯어 넣고 바람이 또 무엇인가를 빚는다고 알면 그만인걸
눈물 다해 한 둘레 눈물 기둥 불망인들 닦고 닦아 혼령 있는 심연 있는 거울이 되도록만 하자
이별의 문턱에 와서 마지막 가장 어여쁘게 내가 있고 영원 그 안에선 그대 날마다 새로이 남아 계심을 정녕 믿으마
말로는 나타 못낼 위안의 저 청람빛, 하늘 아래 생겨난 모든 일은 하늘 아래 어디엔가 거두어 주시리라
김남조 시인 / 오늘
1 눈 오늘 강물을 바라본다 어렴풋한 꿈속이듯 오랫동안 내 이렇게 있었다 오늘은 당신에게 줄 말이 없다 다만 당신의 침묵과 한 가지 뜻의 묵언(默言)이 내게 머물도록 빌 뿐이다
2 오늘 내 영혼을 당신에게 연다 마지막인 허락은 이래야만 함인 줄 알았기에
김남조 시인 / 올해의 성탄
정직해야지 지치고 어둑한 내 영혼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내밀한 광기 또 오욕 모든 나쁜 순환을 토혈인 양 뱉고 차라리 청신한 바람으로 한 가슴을 채워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지등을 들고 성당에도 가지만 자욱한 안개를 헤쳐 서먹해진 제 영혼을 살피는 날이다
유서를 쓰는, 유서에 서명을 하는, 다시 그 나머지 한 줄의 시를 마지막인 양 끄적이는 어리석고 뜨거운 나여
만약에 만월 같은 연모라도 품는다며는 배덕의 정사쯤 쉽사리 저지를 그리도 외롭고 맹목인 열에 까맣게 내 두뇌를 태워 가고 있다
슬픔조차 신선하지가 못해 한결 슬픔을 돋우고 어째도 크리스마스는 마음놓고 크게 우는 날이다 석양의 하늘에 커다랗게 성호를 긋고 구원에서 가장 먼 사람이 주여, 부르며 뿌리째 말라 버린 겨울 갈대밭을 달려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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