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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다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 시인 / 선물
사랑해 당신을 삼십년 사랑했어
너무 늦게 나타났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몰라
어느 겨울날, 내 방에 들어온 청춘의 빛 잔치가 끝난 뒤의 서른송이 장미 그의 손에서 내 손으로 그의 심장에서 나의 심장으로 불이 붙어 하나로 포개지려는데
물에 잠긴 장미 봉오리가 점점 크게 벌어지게
나의 마음도 나의 거기도……
최영미 시인 /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 / 슬픈 까페의 노래
언젠가 한번 와본 듯하다 언젠가 한번 마신 듯하다 이 까페 이 자리 이 불빛 아래 가만있자 저 눈웃음치는 마담 살짝 보조개도 낯익구나
어느 놈하고 였더라 시대를 핑계로 어둠을 구실로 객쩍은 욕망에 꽃을 달아줬던 건 아프지 않고도 아픈 척 가렵지 않고도 가려운 척 밤 새워 날 세워 핥고 할퀴던 아직 피가 뜨겁던 때인가
있는 과거 없는 과거 들쑤시어 있는 놈 없는 년 모다 모아 도마 위에 씹고 또 씹었었지 호호탕탕 훌훌쩝쩝 마시고 두드리고 불러제꼈지 그러다 한두 번 눈빛이 엉켰겠지 어쩌면…… 부끄럽다 두렵다 이 까페 이 자리는 내 간음의 목격자
최영미 시인 /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 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 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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