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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영선 시인 / 도둑의 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4.

정영선 시인 / 도둑의 딸

 

 

  위대한 도둑의 딸인데

  야웅 울어도 배는 홀쭉하고

  차 밑 배고픔을 동그렇게 안았는데

  아, 예쁜데 우리 집 야옹이 할래?

  그 제안을 덥썩 물었지요

  꼬리를 내리고 참치 캔을 기다리고

  방문객이 오면

  햇빛 한 올씩 빼내 낮잠을 짜지요

  사철 피는 꽃기린이 지겨워

  담장 위에 뜨던 푸른 달을 찾아 방마다 쑤셔요

  훌쩍 뛰어 그믐달을 물고 오려고요

  안 열리는 창문너머

  없는 새를 갈기갈기 찢고

  생선토막 물어간 적 없다고 사뿐 발걸음 떼지요

  언니 목을 부빌 때

  눈앞으로 새가 날았어요

  종량제봉투에 박던 발톱이 불쑥 나온 걸

  정말 몰랐다니까요 아얏 소리와

  아파트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어요

 

  생선 비린내가 배를 훑고

  막막해요 야옹

  먹먹해요 야옹

 

웹진 『시인광장』 2012년 9월호 발표

 

 


 

정영선 시인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문학동네 2000),『콩에서콩나물까지의 거리』(랜덤하우스, 2007)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