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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 / 밤 부엉이
밤부엉이 한 마리가 창가에서 나를 꼬나보기 시작했어. 나는 허둥거리며 내 몸의 모든 기관들을 닫아 버렸지만 부엉이의 눈빛이 오토머신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어 열고 노란 방사선을 쏘아 부었어. 나는 사지를 늘어뜨린 채 천천히, 차갑게 융해되어 갔어.
이윽고 잠, 닫혀진 회색 강철 바다, 속으로 한 사내의 그림자가 숨어들어 내 꿈의 뒷전을 어지러이 배회하고 환각처럼 들리는 창가에서, 누구시죠? 내게 희미한 두통과 고통을 흘러 붓는, 누구시죠? 내 死産의 침상에 낮게 가라앉아, 누구시죠? 누구 누구 누구……?
밤부엉이가 밤새 내 지붕을 파먹었어. 아침엔 날이 흐렸고 벌어진 큰골 속으로 빗물이 흘러들었어. 이미 죽은 내 몸뚱이 위에 누군가 줄기차게 오줌을 깔기고,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떠나갔어.
최승자 시인 / 비극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 죽지 못한다, 혹은 죽지 않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고 비극이 되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물을 건너갈 수밖에 없다. 맞은편에서 병신 같은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최승자 시인 / 빈배처럼 텅 비어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리고도 어언 수천 년
빈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최승자 시인 / 살았능가 살았능가
살았능가 살았능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 대답하라는 소리 살았능가 살았능가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만 대답하라는 소리만 살았능가 살았능가
삶은 무지근한 잠 오늘도 하늘의 시계는 흘러가지 않고 있네
최승자 시인 / 생각은
생각은 마음에 머물지 않고 마음은 몸에 깃들이지 않고 몸은 집에 거하지 않고 집은 항상 길 떠나니,
생각이 마음을 짊어지고 마음이 몸을 짊어지고 몸이 집을 짊어지고 그러나 집 짊어진 몸으로 무릉도원 찾아 길 떠나니,
그 마음이 어떻게 천국을 찾을까.
무게 있는 것들만 데불고, 보이는 것들만 보면서, 시야에 빽빽한 그 형상들과 그것들의 빽빽한 중력 사이에서
어떻게 길 잃지 않고 허방에 빠지지 않고 귀향할 수 있을까.
제가 몸인 줄로만 아는 생각이 어떻게 제 출처였던 마음으로 귀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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