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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영자 시인 / 가을비 내리는 날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4.

허영자 시인 / 가을비 내리는 날

 

 

하늘이 이다지

서럽게 우는 날엔

들녘도 언덕도 울음 동무하여

어깨 추스리며 흐느끼고 있겠지

 

성근 잎새 벌레 먹어

차거이 젖는 옆에

익은 열매 두엇 그냥 남아서

작별의 인사말 늦추고 있겠지

 

지난 봄 지난여름

떠나버린 그이도

혼절하여 쓰러지는 꽃잎의 아픔

소스라쳐 헤아리며 헤아리겠지.

 

 


 

 

허영자 시인 / 꽃피는 날

 

 

누구냐 누구냐

또 우리 맘속 설렁줄을

흔드는 이는

 

석 달 열흘 모진 추위

둘치같이 앉은 魂을

불러내는 손님은

 

팔난봉이 바람둥이

사낼지라도

門 닫을 수 없는

꽃의 맘이다.

 

 


 

 

허영자 시인 / 나목에게

 

 

캄캄한 밤은

무섭지만

 

추운 겨울은

더 무섭지만

 

나무야 떨고 섰는

발가벗은 나무야

 

시련 끝에

기쁨이 오듯이

 

어둠이 가면

아침이 오고

 

겨울 끝자락에

봄이 기다린단다

 

이 단순한 순환이

가르치는 지혜로

 

눈물을 닦아라

떨고 섰는 나무야.

 

 


 

 

허영자 시인 / 나팔꽃

 

 

아무리 슬퍼도 울음일랑 삼킬 일

아무리 괴로워도 웃음일랑 잃지 말 일

아침에 피는 나팔꽃 타이르네 가만히

 

 


 

 

허영자 시인 / 너무 가볍다

 

 

나 아기 적에

등에 업어 길러주신 어머니

 

이제는

내 등에 업히신 어머니

 

너무 조그맣다

너무 가볍다

 

 


 

허영자(許英子, 1938년 8월 31일 - ) 시인

경남 함양에서 출생했으며, 서울 경기여고와 숙명여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에서 <노천명 연구>로 문학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하였다. 1962년 박목월 추천 현대문학 등단. 성신여대 인문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1962년 《현대문학》에 〈도정연가〉,〈사모곡〉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가을 어느 날〉,〈꽃〉,〈자수〉 등이 있으며 주요 시집으로 《가슴엔 듯 눈엔 듯》,《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그 어둠과 빛의 사랑》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면》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민족문학상(1998), 숙명문학상(2003)을 수상했다. 한국시인협회장(2002),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2004)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