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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미라 시인 / 꽃의 일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4.

박미라 시인 / 꽃의 일

 

 

옻닭을 먹으러 간 것 또한 꽃의 일이어서

우리도 꽃 필 궁리 좀 하자는 말에

꽃? 꽃! 눈 꼬리 사물사물 접으며

뜨거운 살점을 뜯었다

 

바람도 입맞춤도 깨우지 못한 살갗을 들추고

한 순간 열꽃 핀다, 피었다, 피면서 바로 만개다

피고는 지지 않을 듯 기세등등하다

나, 꼼짝없이 옻의 숙주가 된다

화끈 달아오른다

 

나는 천 년쯤 묵어 사람 형상을 한 불꽃이다·

 

몰래 몰래 손톱을 물어뜯어

기어코 돋는 새순을 잘라내곤 하는데

꽃이 꽃을 알아보는 일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전생의 언어로 적어둔 불의 주소를 찾아낸

이것은 오직 꽃의 일이니

 

뿔뿔이 흩어진 별별 봄날을 다 불러 보며

이제 꽃이 아니야, 빛바랜 묘비명을 읽으며

벌겋게 독 오른 꽃숭어리를 쥐어뜯고 후벼 파서

이름도 색깔도 낯선 꽃을 깨워 놓고

어쩌나 어쩌나

꽃의 목록을 더듬는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9월호 발표

 

 


 

박미라 시인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서 있는 바람을 만나고 싶다』,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안개부족』과 수필집으로 『그리운 것은 곁에 있다』가 있음. 2007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시인협회 회원. 충남 작가회의 이사. 충남 시인협회 이사. 빈터 동인. 다詩 동인. 의정토론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