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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석본 시인 / 흑백사진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7.

구석본 시인 / 흑백사진

 

 

  바람이 흐르지 않는다

  햇살이 나뭇잎처럼 바싹 말라있다

  고요가 얼음처럼 딱딱하다

  그것을 배경으로 남자와 여자가

  천 년 묵은 무덤에서

  걸어 나온 사람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소리가 빠져나간 웃음이 못처럼 박혀 있다.

 

  죽어서 더욱 생생한 남자와 여자,

  시들지 않는 웃음이, 죽은 바람이,

  추억을 망각한 사랑이

  낡은 벽에 못 박혀,

 

  당신이 스쳐온 풍경과

  당신이 잊어버린 추억과

  스스로의 가슴을 적시던 당신의 흐느낌도

  언젠가 물과 바람과 햇살이 다 말라버린 채

  지상의 벽에 꽝꽝 못 박히는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구석본 시인

경북 칠곡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5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지상의 그리운 섬』,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 『쓸쓸함에 관해서』 등과 산문집 『시여, 다시 그리움으로』,  『언어의 안과 밖』이 있음. 1985년 대한민국문학상, 대구문학상, 대구광역시문화상(문학부문) 등 수상. 『시와반시』 주간 역임.  현재 대구교육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