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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기만 시인 / 몽마르뜨 이젤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1.

권기만 시인 / 몽마르뜨 이젤

 

 

  물감은 소리를 머금고 감춘다

  빛을 통과시키고 빛나듯

 

  붓을 드는 순간 꽃은 떤다

  물감에 배인 꽃의 입술

  벗은 어깨가 흘러가는 곳으로

  한사코 따라나서 보지만

 

  따라 갈 수 없는 너머를 가리고 있는 붓은

  문이거나 장막이다

 

  물감의 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 있다

  트로이 목마를 타고 도착한

  그림은 꽃이 만들어낸 성(城)

 

  성(城)의 운명은 무너지는 것, 감열지처럼

  지나간 흔적만 흑백으로 남은,

  누군가 에펠탑을 이젤로 쓰는 그날

  모든 화가는 거인이 된다

 

  성벽을 성벽으로 감춘 그림

  한 장의 손수건처럼 잡아당기면

  몽마르뜨 언덕이 어깨를 드러낸다

  소리가 굳어 이젤이 된

 

  사크레쾨르 성당이 마리아처럼 서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1월호 발표

 

 


 

권기만 시인

경북 봉화에서 출생. 2012년 계간 《시산맥》 등단. 제7회 최치원 신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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