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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라라 시인 / 저 구석의 가방
나는 저 가방에게 웅크리고 있다 해야 할 지 벼르고 있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지만 포용에 관한 한 가방만큼 쉬워진다면 세상은 자주 비상 전력 없이 정전된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어쩌다 내가 가방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에 대해 나를 빈틈없이 꺼주기 때문이란 변명은 변명일 뿐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벼르기도 했다 마침내 집을 완성한 고치의 순간처럼 결연하지만 외로운 것의 하나로 툭 떨어져 웅크렸던 어떤 날, 외로움의 끝은 볼펜이나 종이의 끝과 닿아 있었다 내가 봄이라 적어보는 사이 누군가의 외로움이 왔다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아직 내가 잠에서 깰 생각이 없었으므로 누군가는 잠들 수 없는 날이었다 그 때 내 밖의 순간은 내가 아니었듯 포용에 관한 한 가방의 의지가 아니므로 가방의 한 계절은 나방의 한 계절보다 짧고 위태로울 수 있지만 웅크리거나 벼르거나 저 가방의 예정된 구석이라 할 수밖에,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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