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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현정 시인 / 지붕 위 새들은 연애를 미룬다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6.

오현정 시인 / 지붕 위 새들은 연애를 미룬다

 

 

모험으로만 당신을 만날 수 있어

도라의 탐험을 마치고 무인 레스토랑엘 간다

 

지정된 자리에 앉는 순간

정속주행이 헛된 게 아니라 과속이 문제라는 걸 안다

 

당근과 채찍을 든 주문로봇이 배를 쓰윽 내민다

좋아하는 건 당근, 분명히 꾹꾹 누른다

 

당신이 내게 줄 수 있는 건 채찍뿐이지만

맛있는 주문은 서서히 익힌 불꽃 춤

 

생은 씹을수록 비아 돌로사(Via Dolorosa)가 터진다

키웨스트에서 건너온 쿠바의 시인 비티에르를 만나면

발생지보다 도착지에서 나비나리가 핀다

 

자신을 혁명하기 위해 혁명광장의 빛과 그늘이 된

체 게바라와 호세 마르티에게 살사댄스를 청하는 사람들은

당신과 하나 되는 죽음을 자른다

 

수공예품공장에서 고고학자의 꿈을 굽고

지붕 위 새들은 연애를 미룬다

 

신록의 심장을 핥고 정글게임에서 전진 한다

올드 카에 올라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를 바퀴에 굴린다

 

지문이 뜨겁다, 새들의 다리가 별식을 나르느라

북쪽 카리브해를 넘어 불은 젖을 안고 아바나로 온다

 

월간 『시인동네』 2020년 3월호 발표

 

 


 

오현정(吳賢庭) 시인

경북 포항에서 출생. 숙명여대 불문과 졸업. 1989년『현대문학』2회 추천완료로 등단. 시집으로 『라데츠키의 팔짱을 끼고』, 『몽상가의 턱』, 『광교산 소나무』, 『물이 되어, 불이 되어』외 다수 있음. 한국문협작가상, PEN문학상, 애지문학상, 숙명문학상 등을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역임. 한국시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