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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 가을
낙엽철 햇빛 속에서
머리를 긁어 올린다 흰 비듬이 우수수 쏟아진다
가슴에 꽂힌 모진 눈빛들 칼끝 같은 말들 다 쏟아진다
푸른 하늘
제주 어디쯤 검은 돌 틈 흰 갈꽃에 가 있는 내 마음 그물 새
가을.
김지하 시인 / 갈꽃
싸늘한 듯 살가운 가을 풀 냄새 이리 돌아오는 옛 마을
코끝에 또 가슴속에 갈꽃 하나 흔들려
나 지금 거리에서 버티고 모멸에도 미소짓고
술 취한 밤 파김치 발길이 집 찾아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것은
갈꽃 하나 내 아내
마음의 틈
이 가을 숨쉬는 일 모두 다
아아 귀향!
김지하 시인 / 길
걷기가 불편하다 가야하고 또 걸어야 하는 이곳 미루어 주고 싶다. 다하지 못한 그리움과 끝내지 못한 슬픈 노래를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눈물이 흐른다. 보내야 하고 잊어야 하는 이곳 눈 있어 보지 못한 너와 입 있어 말 못하는 내가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김지하 시인 / 꽃 그늘
아 이제야 그늘 속에
꽃 핀다
꽃과 그늘 사이 언젯적부터인가 그 긴장은
이제야 짧은 행간에 웬 무늬무늬 드러나 흰 무늬들 속의 속 흐드러진다
내 삶의 꽃
여기 청도 각북골에 와 엎드린 한 새벽에 흘러 흘러 넘치며 아롱거리는 샘물 속
김지하 시인 / 끝
기다림밖엔 그 무엇도 남김 없는 세월이여 끝없는 끝들이여 말없는 가없는 모습도 없는 수렁 깊이 두 발을 묻고 하늘이여 하늘이여 외쳐 부르는 이 기나긴 소리의 끝 연꽃으로도 피어 못 날 이 서투른 몸부림의 끝 못 믿을 돌덩이나마 하나 죽기 전엔 디뎌보마 죽기 전엔
꿈없는 네 하얀 살결에나마 기어이 불길한 꿈 하나는 남기고 가마 바람도 소리도 빛도 없는 세월이여 기다림밖엔 남김 없는 죽음이 죽음에서 일어서는 외침의 칼날을 기다림밖엔 끝없는 끝들이여 모든 끝들이여 잠자는 끝들이여 죽기 전엔 기어이 결별의 글 한 줄은 써두고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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