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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미경 시인 / 레드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5.

고미경 시인 / 레드

 

 

  가을비가 늑대처럼 운다.

  소녀의 바이올린은 한 시간 째 저음으로만 흐느낀다.

 

  낙엽들은 종이비행기 흉내를 내다가

  손수건 흉내를 내다가 늑대울음 소리를 내다가

  소녀의 바이올린 소리를 낸다.

 

  연립주택 담장에 핀 맨드라미가 젖는다.

  의자에 앉은 노인이 한 시간 째 미동도 없이

  안절부절못하는 빗줄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싸구려여인숙에 둥지를 튼

  월세 사내가 초라하게 젖는다.

  동공 속으로 텔레비전의 무표정한

  장면들이 꾸역꾸역 삽입된다.

 

  가을비가 늑대처럼 운다.

  소녀의 바이올린이 빗소리를 낸다.

  맨드라미가 비에 젖어 활활 타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2월호 발표

 

 


 

고미경 시인

1964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인질』(문학의전당, 2008)이 있음.  현재 '시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