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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경 시인 / 레드
가을비가 늑대처럼 운다. 소녀의 바이올린은 한 시간 째 저음으로만 흐느낀다.
낙엽들은 종이비행기 흉내를 내다가 손수건 흉내를 내다가 늑대울음 소리를 내다가 소녀의 바이올린 소리를 낸다.
연립주택 담장에 핀 맨드라미가 젖는다. 의자에 앉은 노인이 한 시간 째 미동도 없이 안절부절못하는 빗줄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싸구려여인숙에 둥지를 튼 월세 사내가 초라하게 젖는다. 동공 속으로 텔레비전의 무표정한 장면들이 꾸역꾸역 삽입된다.
가을비가 늑대처럼 운다. 소녀의 바이올린이 빗소리를 낸다. 맨드라미가 비에 젖어 활활 타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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