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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시인 / 입추(立秋)
털이 숭숭 빠지는 올무에 걸려 죽은 고라니를 거름자리에 묻었더니 밤이면 너구리들이 눈에 불 켜고 거기를 파댔다
며칠 전에는 어스름 타고 온 멧돼지 가족이 거름자리 속에 든 지렁이들을 몽땅 뒤져먹고 갔다
그냥 놔둬도 저절로 자라다 지쳐 저절로 주저앉을 풀섶 튕겨나가며 처마 그늘을 찢어발기는 매미소리 아무데로도 못 빠져나갈 것 같다
가을이 저 소리 밀반죽에 이겨 수제비 뜨며 바짝 다가오기 전에 내게도 뒤적거릴 게 있는지 자라다 지친 풀섶을 바라본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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