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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병초 시인 / 입추(立秋)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5.

이병초 시인 / 입추(立秋)

 

 

털이 숭숭 빠지는 올무에 걸려 죽은 고라니를 거름자리에 묻었더니 밤이면 너구리들이 눈에 불 켜고 거기를 파댔다

 

며칠 전에는 어스름 타고 온 멧돼지 가족이 거름자리 속에 든 지렁이들을 몽땅 뒤져먹고 갔다

 

그냥 놔둬도 저절로 자라다 지쳐 저절로 주저앉을 풀섶 튕겨나가며 처마 그늘을 찢어발기는 매미소리 아무데로도 못 빠져나갈 것 같다

 

가을이 저 소리 밀반죽에 이겨 수제비 뜨며 바짝 다가오기 전에 내게도 뒤적거릴 게 있는지 자라다 지친 풀섶을 바라본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2월호 발표

 

 


 

이병초 시인

1998년《시안(詩眼)》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로 등단. 시집으로 『밤비』와 『살구꽃 피고』가 있음. 불꽃문학상 수상.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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