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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 시인 / 첫 눈
십일월의 산발한 첫눈에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아직도 허방 짚는 삶이라니… 외마디 비명 같은 싸락눈이 인정사정도 없이 흐드러지다 사라집니다
영화 ‘닥터지바고’를 보러갔던 어느 해 겨울, 한 영혼이 가만히 내 어깨에 앉았다가 밤눈처럼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점점 말라갔고, 시인이 된 이후부터는 대신 말言의 옷을 덕지덕지 껴입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말은 내 안에서 기생충처럼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합니다 말에 눌려 질식할 것 같다가도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할 팔자인 듯 합니다
아직도 첫눈이 오면 마음이 허방 짚느라 허둥대는데 한 때 달콤하게 동거했던 말들을 어찌해야하나 누가 나에게서 말의 검불을 하나씩 떼어 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세요 십일월의 나무들도 말을 줄이느라 잎을 모두 떨구었네요
숲 속의 오두막 같은 작은 누옥 하나 남기고 모두 떠나보내고 싶습니다
나와 끝까지 은거할 딱 한 줄이면 되지 않겠어요?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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