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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향미 시인 / 씨크릿 가든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8.

김향미 시인 / 씨크릿 가든

 

 

  신은 인간을 위해 꽃을 선사하였고 신의 정원에 인간이 가끔 꽃을 대신한다

 

  뚜껑에 표시된 글자와 두 개의 통 속에 담긴 내용물이 서로 다르다

  먼저 한 개의 통을 비우고 다른 통의 내용물을 비워낸 통에 옮겨 담는다

  명찰을 바꿔 달고 등교한 학생이 있다면 사람을 바꿨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뚜껑만 바꿔 닫으면 되는 일이었다

  감히 누가 행할 수 있는 창피인가

 

  죄보다 더 죄스럽고 죄보다 더 부끄러운 씨알이 뒤란에 뿌려진다

  꽃병을 깨지 않았지만, 깨진 꽃병 옆에 서 있던 내가 얼굴 붉어지는 것

 

  꽃을 실수라 일컫는 사람, 얼마나 슬픈 종족인가

  반대를 생각해 보는 일은 꽃다발 위에 神이 꽂아주는 카드 같은 거

  장미에게 자디잔 배경이 되어주는 안개꽃 같은 거

  呪文 같은 변명, 끼니마다 상에 올랐다 그냥 내려지는 밑반찬만큼이나 식상하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만들어낸 일이라면 꽃같이 아름다울 일

  등불 피는 뒤란, 오랜 침묵을 건너온 개화의 시간

  실수를 패러디하는 또 한 송이 점묘

 

  영혼이 뒤바뀐 남녀가 상대의 일상이라는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히 누가 행할 수 있는 능력인가

  명찰 대신 영혼을 바꿔 담은

  실수가 명분이 되는, 꽃과 꽃의 차이

  지금은 뒤란을 자랑하는 때, 한 송이 꽃 제단에 바친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1월호 발표

 

 


 

김향미 시인

2009년 《유심》을 통해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