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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마종기 시인 / 낚시질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8.

마종기 시인 / 낚시질

 

 

낚시질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平生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中年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마종기 시인 / 남은 풍경

 

 

새 한 마리 작은 나뭇가지에 앉았습니다.

나뭇가지 작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새가 날아 가버린 후에도 나뭇가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떨고 있습니다.

나뭇가지 혼자 흐느껴 우는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풍경이 혼자서 어두워집니다.

 

 


 

 

마종기 시인 / 담쟁이 꽃

 

 

내가 그대를 죄 속에서 만나고

죄 속으로 이제 돌아가니

아무리 말이 없어도 꽃은

깊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죄 없는 땅이 어느 천지에 있던가

죽은목숨이 몸서리치며 털어 버린

핏줄의 모든 값이 산불이 되어

내 몸이 어지럽고 따뜻하구나.

 

따뜻하구나, 보지도 못하는 그대의 눈.

누가 언제 나는 살고 싶다며

새 가지에 새순을 펼쳐내던가.

무진한 꽃 만들어 장식하던가

또 몸풀듯 꽃잎 다 날리고

헐벗은 몸으로 작은 열매를 키우던가.

 

누구에겐가 밀려가며 사는 것도

눈물겨운 우리의 내력이다.

나와 그대의 숨어있는 뒷일도

꽃잎 타고 가는 저 생애의 내력이다.

 

 


 

 

마종기 시인 / 당신의 심장에서 메아리까지

 

 

우리들의 슬픔은

그늘이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사랑,

옛날에 옷 벗은 우리들의 상처도

메아리다.

 

오늘은 그늘에서

비가 잠을 잔다.

잠 속에서도

우리들의 몸 속이 젖는 소리.

 

젖은 나이의 보도 위에

우리들의 낙엽이 흙이 된다.

내 심장에서 흙까지

오래 울리는 당신의 메아리까지

 

 


 

 

마종기 시인 / 맑은 날의 얼굴

 

 

그만한 고통도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하늘나라를 기웃거릴 수 있겠냐구?

그만한 절망도 경험해 보지 않고, 누구에게

영원히 살게 해 달라고 청할 수 있겠냐구?

벼랑 끝에 서 있는 무섭고 외로운 시간 없이

어떻게 사랑의 진정을 알아낼 수 있겠냐구?

말이나 글로는 갈 수 없는 먼 길의 끝의 평화,

네 간절하고 가난한 믿음이 우리를 울린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

하늘을 보니 네 얼굴이 넓게 떠 있다

웃고 있는 얼굴이 몇 개로 보인다.

너 같이 착하고 맑은 하늘에

네 얼굴 자꾸 넓게 퍼진다.

눈부신 천 개의 색깔, 네 얼굴에 퍼진다.

 

 


 

 마종기 시인

1939년 일본 동경에서 출생. 연세대 의대 및 서울대 대학원 졸업. 월간 『현대문학』 1959년 1월호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발표 이후 3회 추천 완료되어 등단. 시집으로 『조용한 개선(凱旋)』, 『두번째 겨울』, 『변경(邊境)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등의 시집과 공동 시집 『평균율』Ⅰ·Ⅱ이 있음.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