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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성임 시인 / 그늘을 경작하다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8.

이성임 시인 / 그늘을 경작하다

 

 

  밥그릇이 놓일 자리에 시 한 편을 올려놓는다

 

  A4 용지만한 하늘 한 귀퉁이 뚝 떼어 다가

  음지에서 경작한 詩語들을 밥알 세듯 하나 둘 펼쳐놓는다

 

  천길 벼랑도 건너 뛸 수 있는 침묵의 날개 달아 놓았으나

  머리꼬리 떼어낸 콩나물 줄기만한 행간, 이곳이 깊다

 

  시시각각 새로운 상형문자를 받아 적는 구름옥편을 펼쳐보다가

  낮달의 뒤편, 세 번째 쇄골에 새겨진 별의 신화를 엿보다가

 

  수백 년 묵은 붉은 여우꼬리로

  무릎을 탁- 후려 칠만한 절창 한 편 지어 올리고 싶다

 

  무늬바위장대가 마른 침을 삼키는 창가

 

  나는 웃자란 메밀대처럼 앉아

  아직도 詩의 그늘 한 평 경작 중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1월호 발표

 

 


 

이성임 시인

1961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 2009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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