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천 시인 / 늦가을 들판에서
다들 돌아가는구나 풀도 벌레도 다들 돌아가는 구나
풀들의 집은 어디일까 벌레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우리도 돌아가고 싶구나 따뜻한 등불 하나 켜놓은 집 그립구나
윤수천 시인 / 면도를 하면서
아침마다 수염을 깎는 이 즐거움 나도 한 나라를 정벌할 수 있고 새로운 땅에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이 유쾌함
나는 오늘도 나의 나라를 세운다 청청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말한다
불의는 가라 불의는 가라 정의와 도덕의 나라를 세우리라
나는 오늘도 수염을 깎으며 새로운 나의 나라 자유가 초원처럼 펼쳐진 그 융성의 나라를 세운다
윤수천 시인 / 목숨을 거는 사랑
사는 일은 무서움이다. 사랑도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만 사랑을 흉내낼 뿐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 그런 후에 다들 모여서 사랑했었다고 말한다.
후회스러운 부끄러움이여 사랑이 진실하지 않으면 삶도 진실일 수 없다.
목숨을 걸어본 경험 없이는 감히 사랑했다고 말하지 말라.
윤수천 시인 / 바람 부는 날의 풀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윤수천 시인 / 밥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밥 한 그릇을 비우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채워 주고 싶다는 것 밥은 곧 마음이다.
윤수천 시인 / 봄 아침
누가 오려나 보다.
들판 가득 푸른 바람이 분다.
산등성이엔 해가 오르고
그 해를 가슴으로 받는 나무 가지들.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들먹이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분명 오긴 오려나 보다.
윤수천 시인 / 사막
그곳에 가면 별을 볼 수 있다. 그곳에 가면 더 맑은 외로움을 만날 수 있다. 모래뿐인 땅 아득한 지평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올 수 있는 나라 모든 것을 다 잊고 올 수 있는 나라 그곳에 가면 맑은 영혼을 만날 수 있다. 별처럼 맑은 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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