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金善雅) 시인 / 나이롱박수
서리 내렸을까.
나선형 거미줄이 진득진득한 영등포역이었다. 벌어먹기 힘들어 죽겠다는 반백의 사내, 손발이 유난히 가늘고 차가운 사내는, 기차가 도착하자 노인이 수확해 온 포대자루를 부리염낭거미처럼 낚아챈다. 오싹한 손이 직조한 거미줄일수록 먹잇감을 힘껏 조여서는 나선형 계단 아래로 사라져간다. 잽싸다. 그 뒤쪽, 말라비틀어진 호박오가리처럼 눈빛 까칠한 노인, 부리염낭거미보다 손발이 큼지막하니 따뜻하다. 나선실 한 줄 녹아내린다. 거미줄이 느슨해진다.
서리 걷혔을까. 제 몸 텅 빈 주제에 고향집 뒷마루 누런 호박잎은 할랑할랑 나이롱박수나 치고.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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