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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시인 /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하여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플라스틱 스티로폼 시멘트말고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처럼 창창하게 살았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발표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은 살았을 한 그루의 나무가 베어질 것이네
그 나무만큼 나의 시가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찼으면 좋겠네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이끌어주는 안경이 되고 신발이 되고 부엌칼이 되었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맹문재 시인 / 손님 1 어떻게 하다 보니 김수영 시인이 우리집에 왔다 시인이 왔다고 해서 나의 생활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시간을 아끼면서 매일 출근하고 보내온 책들을 뒤적거리고 자식들 공부를 걱정했다 대출금 납부일을 떠올리고 사기꾼 가족인 검찰총장을 욕하고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종교집단을 개탄했다 김 시인 역시 나의 생활에 개의치 않고 청탁 원고를 쓰고 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다녀오고 번역 일에 매달리고 타락한 언론을 나무랐다 2 어떻게 하다 보니 김 시인이 돌아갈 날이 되었다 떠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이번 방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이선영 시인과 기념사진이라도 찍자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보다는 한 편의 시로 남기는 것이 겸손한 것이고 오래 품는 것이고 시인다운 품격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3 김수영 시인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경기도 용인까지 전철로 배웅해주었다 우리집에 온 지 꽤 여러 날 되어 정이 들었던 것이다 배웅하고 돌아올 때 김 시인은 조용히 웃어주었다 썩어빠진 대한민국이지만 괴롭지 않고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는 시인의 미소였다 4 김수영 시인이 우리집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안 믿겠지만 나도 믿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탄생 100년을 앞두고 우리집을 잠시 다녀간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추억이 있는 한 인연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맹문재 시인 / 손목시계
날마다 날개를 찾다보니 어느새 마흔이다 그사이 깃이 돋은 고향의 도랑물은 말라붙었고 뽕나무밭은 가시덤불 속으로 묻혔다 나는 항상 나의 손목시계가 날개를 달 수 있다고 믿고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감기약을 사 먹고 때로는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에 갔다 그때마다 내가 달고 싶은 날개들이 길 건너편에서 반짝거리며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날개들을 바라보며 내가 지닐 수 없는 무지개라고 아쉬워했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찾는 날개들이 나를 별처럼 높게 날리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떨어진 깃 하나가 나의 신발이 되고 양식이 되고 안방이 되고 나의 거울이 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 손목시계부터 찾고 고모님이 입원한 병원에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맹문재 시인 / 초두부 한 그릇
마구간의 소도 봉당 위의 개도 닭장의 닭들도 한 그릇 뒤란의 장독도 헛간의 지게도 멍석도 처마 아래의 시래기도 한 그릇 마당가의 짚가리도 논의 움벼도 한 그릇 밭가에서 바람을 부르는 밤나무도 복숭아나무도 호두나무도 한 그릇 앞산의 나무들도 산새들도 산짐승들도 한 그릇 정지 옆의 오동나무도 샘가의 살구나무도 논둑의 마른 풀들도 한 그릇 뒷산의 산길도 산바람도 어스름도 한 그릇 할아버지도 큰아들 큰며느리도 세 딸과 막내아들도 손자들도 한 그릇 이웃집 할머니들도 아줌마들이 끌고 온 조무래기들도 한 그릇 저녁을 맞는 초가지붕도 댓돌 위의 신발들도 가마솥의 장작불도 한 그릇 산마루를 넘고 밭고랑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온 눈발들도 한 그릇 객지로 나간 자식들을 걱정하는 할머니도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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