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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반연희 시인 / 뿌리 없는 나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5. 17.

반연희 시인 / 뿌리 없는 나무

 

온 몸으로 욕망을 밀어 올리는 것만이 살 길

 

벽이란 벽은 모두 기대고 보는 게 살길

 

그 벽들 모두 기대어 쩍쩍 갈라지게 하는 게 살길

 

발이란 발은 모두 걸어 보는 게 살길

 

그 발들 모두 걸어서 다른 발은 넘어뜨리는 게 살길

 

손이란 손은 모두 잡아 보는 게 살길

 

그 손들 모두 잡아서 잡힌 손목은 비틀어 버리는 게 살길

 

마지막 살길은

 

허공에 몸을 던져 인적 없는 산길

 

통나무 의자 되는 길

 

계간 <시와 문화> 2012년 봄호

 

 


 

 

반연희 시인 / 뜬구름

 

 

 앞서 가는 모든 것들은 거울, 거울 속에 뜬구름이 있다

 금이 간 구름을 싣고 달린다 떠 있는 구름은 구름의 형식으로 달린다 금이 간 구름을 싣고 뜬구름의 형식을 쫓아가는 나는 위험하다 야생동물 보호지역, 뜬구름은 동물이 아니므로 보호되지 않는다 뜬구름이 바람결에 흩어진다 야생의 것들은 야생의 이빨로 자신을 보호한다 나는 길들여진 동물이므로 길들여진 형식으로 사라져간다 자귀나무 꽃이 속눈썹을 떨고 있다 사라져가는 나는 다리를 끌며 걷는다 무거워진 구름을 질질 끌고 간다

이빨이 생긴 구름이 내가 가야할 곳에 있던 꽃들을 따먹고 구덩이를 파놓는다 뜬구름은 폭력적이다 내 밥을 갉어먹고 나를 떠돌게 한다 아주 가끔 뜬구름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끌어 올린다 나는 뜬구름에 길들여지고 뜬구름의 형식으로 흩어져간다

 청춘을 끌고 다니던 뜬구름은 다른 형식의 세계 속에 아직 떠 있다 뜬구름이 뜬구름을 낳는다 눈앞의 세계가 새로운 옷을 바꿔 입는다

- 2015년 <시와 문화> 겨울호

 

 


 

반연희 시인

2001년 계간문예 《다층》 으로 등단. 다층문학회, 다층문학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