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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시인 / 대화의 조건
강물 위에 얼음이 무슨 말을 새기고 있다 물의 말이라기에는 잔뼈가 너무 많다
내가 너의 말을 듣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대화에 대한 너의 해석이니까
얼음에 걸려든 지푸라기라든가 잔돌아라든가 이것들이 우리 결빙의 오브제였다 잘 살았다든가 헛살았다든가 이런 디테일 없는 결정체들은 얼음의 수명과는 관련이 없었다
저 수압 속에서 물고기가 살았다거나 죽었다거나 하는 그런 공방도 이미 빙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수십 년 반복된 해빙과 결빙은 수위(水位)와는 별개여서 얼음을 이루는 조건은 따로 있었다
극한기의 얼음은 발이 따뜻한 다족류가 건너가도 족적을 남기지 않았다
얼음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말을 듣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내가 네게 말할 때의 영악한 방식이었다
얼음을 녹였다가 얼리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오브제는 단순해져갔다
빙판은 실금을 그리다가 색이 살아나는 타투를 남겼다 잔해라는 말을 남길 수 없는 결빙이었다
장미의 주검을 새겼는데 거기서 비석 같은 새가 꿈틀거리며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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