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추종욱 시인 / 법전의 역습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16.

추종욱 시인 / 법전의 역습

 

 

켜놓은 전구로도 어두운

창 없는 쪽방이었다

후덥지근한 열대야의 오후

밀폐된 방이 흘리는 땀으로

후줄근해져 누워 있는 사내

법전처럼 너덜거린다

그는 해마다 考試에 떨어진 뒤,

가장 중요한 건강을 잃었고

조금씩 말라가는 몸은

부식된 방바닥의 한 부분처럼

곰팡이가 번졌다

그가 만진 법전들은

오래전에 꺼진 등불이다

법전 속 빨간 밑줄을 모아 새끼를 꼰다

며칠 후 그의 목에는

몇 권 분량의 긴 이야기들이 감겨있었다

일주일 동안 환풍기에 목이 매달려도

두 눈 부릅뜬 채

일몰하는 법전 속을 노려본다

법전, 그 어디에도

사내의 행복추구권은 없었다

 

 


 

추종욱 시인

1970년 대구 출생. 2007년 계간 《서시》 2007년 하반기 신인상에 〈보르헤스의 숲에는 푸른 숲이 있을까?〉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난시 동인, 시산맥 회원, 서시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