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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함기석 시인 / 실내악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18.

함기석 시인 / 실내악

 

 

고양이 체셔가 웃으며 건반 위를 걷는다

연주가 시작되고

오르간 양쪽에 불이 켜진다

양초 대신 손이 꽂혀 타는 두 개의 촛대

 

오르간 앞엔 팔 없는 소년

( )가 앉아 있다

괄호의 눈에서

푸른 쇠구슬이 반음 차로 떨어질 때마다

체셔는 체셔체로 걸음을 옮긴다

 

원 스텝 투 스텝, 반음 쉬고

흰건반 검은건반, 다시 반음 쉬고

점프해 발을 바꾸는데

음에 맞춰 혀를 날름거리는 사색가가 나타난다

 

꿈틀거리는 이 침묵은 붉은 줄무늬가 또렷한 뱀이다

 

고양이가 앞발로 톡톡 건드리자 뱀은

머리를 빳빳이 세우고

체셔의 웃음과

( )의 사라진 팔을 번갈아 쳐다본다

 

체셔는 웃으며 다시 체셔체로 걷는다

건반 사이에서

날개 가득 ( )색 피를 묻힌 새가 날아올라

밤의 동공 속으로 날아간다

 

 


 

함기석 시인

1966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1993년 한양대학교 수학과를 졸업.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국어선생은 달팽이』(세계사, 1998)와 『착란의 돌』(천년의시작, 2002), 『뽈랑공원』(랜덤하우스, 2008) 그리고 동화 『상상력 학교』(대교출판, 2007)가 있음. 2009년 제10회 '박인환문학상' 수상. '제14회 눈높이아동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