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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진은영 시인 / 스타바트 마테르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18.

진은영 시인 / 스타바트 마테르

 

 

십자가 아래 나의 암소가 울고 있다

오 사랑하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

나는 꿈에 못 박혀

아직 살아 있답니다

 

밤을 향해 돌아서는 내 입술을

당신의 젖은 손가락으로 읽어 보세요

세계는 거대한 푸른 종소리처럼

내 머리 위에서 울리고 있어요

 

나는 밤의 부속품처럼

어둠 속으로 깊숙이 떨어져 나왔어요

별처럼 순한 당신 눈빛과

네 개의 길고 따듯한 뱃속을 지나가는 계절들 사이에서도

소화되지 않은 채 나는 남아 있어요

 

당신은 오래된 술 같아요

내가 마시는 술에 슬픈 찌꺼기가 떠도는 건

내 탓이 아니에요, 어머니

무엇을 마시든 나는 두껍게 취기를 껴입지만 늘 추워요

나를 향해 당신이 동굴처럼 뚫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 팔을 뻗어 서로를 안아요

오 사랑해

서로를 자꾸 끌어당겨요

물에 빠진 사람들처럼

 

두려움보다

슬픔보다

흰 재가 더 높이 쌓이고 있어요

 

어머니, 결국 나는 내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까요?

뚜껑 열린 석관이

세월 속에서 제 주인을 유실하듯

당신이 당신 아이를 잃어버렸듯

바람이 날아가는 투명비닐 봉지를 분실하듯

 

당신은 찾을 수 없어요

정말이지 우린 다르게 생겼어요

당신을 닮았던 얼굴 위에 낯선 고통의 진흙을 덧칠하며

내 얼굴은 점점 두껍게 말라갈 테니

 

목이 말라요 어머니

마른 풀밭 위에 빈병처럼

나는 또 흘러들어요

당신이 몇 방울 남지 않은 곳으로

 

 


 

진은영 시인

1970년 대전에서 출생. 이화여대 철학과와 同  대학원 졸업(박사).  2000년 계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과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와 그밖의 저서로는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등의 철학하기와 관련한 저서 등이 있음. 2009년 제14회 김달진문학상 젊은 시인상, 2010년 제56회 현대문학상, 2013년 제15회 천상병 시문학상, 2013년 제21회 대산문학상 시부문 수상. 현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 및 인문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