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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석 시인 / 글자들이 타고 다니는 기차
밤은 두 눈이 파도치고 있었다 밤의 노란 링 귀고리가 살랑 흔들렸다 글자들이 힐끔힐끔 나를 읽고 있었다 글자들이 수군거렸다 저기 봐 이 기차에 처음으로 사람이 탔어 도대체 어딜 가는 길일까?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 예쁜 글자 하나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 과자는 모두 조약돌로 되어 있었다 조약돌 구름과자 조약돌 기린과자 조약돌 토란과자 조약돌 포도를 꺼내 입에 넣자 입에서 아름다운 선율의 슬픈 악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눈을 감고 꼭 다문 입술 뒤의 어두운 울림통을 생각했다 포도 속에 뿌리 내린 빛과 음의 실뿌리들을 생각했다
취한 달이 지나갔다 얼굴에 깊고 쓰린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 차창 밖 세상으로 빈 술병을 휙 집어던졌다 낮에 먹은 상한 빛을 밤에 토하고 있었다
말했다가 다가와 내게 말했다 이 기차에 탈옥한 글자들이 탔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사람을 보면 죽일지도 몰라요 그래요? 그거 참 잘 됐네요 내 뒷자리에서 홀쭉한 침묵이 말했다
기차는 어둠 속을 달렸다 허공으로 부드럽고 착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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