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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수진 시인 / 허바허바 사진관의 이력
강남역 1번 출구 바로 앞 허-바 허-바 하는 순간들이 입을 벌린 채 흐른 시간들, 그 틈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명확한 컬러의 자신감, 허바허바 사진관이 있다
허술한 필름이든, 바르게 나온 필름이든 이곳에 맡겨진 것들은 철저히 사각의 틀 속에 갇힌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그들이라도 심장은 뛰고 있었을진데 무심히 걷고 있었던 사람의 손바닥도 이제 막 펼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곳은 축하를 전하려는 사람의 떨리던 동공까지 포획하여 햇빛에 널어 말리고 있는 중이다
제 속을 들어낸 것만이 보존될 수 있다 몸속의 수분은 모두 말라 버린지 오래, 그들의 내부는 현상(現像)과 함께 버려졌을 것이고 언젠가 박제된 기억이 십 년 가까이 만세를 부르는 저 사내의 어깨를 조금씩 무너뜨릴 것이다 개중 내뱉지 못한 말들은 먼지가 되어 쌓일 것이고 공중에 한쪽 엉덩이를 걸친 여자의 허리만이 위태롭다 사각을 벗어나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은 액자 틀처럼 말이 없고 잘 말려진 기억만이 허바허바 사진관의 문 앞을 장식하고 있다
시집 '한때 구름이었다' 제3부(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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