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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규정 시인 / 분홍역에서
아득히 멀어져 가는 기적소리를 늦은 봄비로 그쳐 세우리 우산꽃, 분홍잎새 활짝 핀 유리창에 부서지고 깨어지며 몰려 나간 안색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마다의 싸움에서조차 한쪽 편을 들어주고 얻은 전흔의 전리품인가 반쪽 잘린 차표를 쥐고 몇 번이나 밖을 내다보다가 사라져 간다 그래 가장 낮은 목소리들이 사는 가슴 깊숙이 철렁 그물을 던져도 아무 것도 걸리지 않는 우리들의 삶이란 허탕칠 때 비로소 아름다웠다 남아 있는 것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돌아서는 봄날의 간이역 반쪽을 줍다가 나머지를 잃어버린 우리 흔들리며 떠나던 유리창에 우산꽃은 지고 우리들은 깊이 박힐 못 하나의 모습으로 언제까지 제 얼굴을 외우며 서 있어야 한다
-시집 〈황야의 정거장〉(199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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