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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시인 / 잠복기
좋아졌다고 생각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좋아진 것을 의심하지 않아 길 건너 저쪽에서 이쪽으로 한 사람이 건너 왔습니다 멀리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먼 곳 또한 가까운 곳과 전혀 다른 곳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모이고 흩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바다는 우리의 배후가 되었고 우리는 바다의 배후가 되었습니다 성급히 사라져버린 것은 그 아침의 햇살이었습니다. 좋았던 것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기어이 북엇국을 끓인 그 아침을 끝으로 잠깐 만났던 것은 잠깐의 일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무엇인가 남아있는 것을 위해 덧 붙여야 할 말이 있었지만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우리가 길을 건널 때 우리는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밤의 어둠 속에 숨어있던 시퍼런 자존심만 살아있어 어디에서 다시 우리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주 잠깐 사이 우리는 좋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긴 시간 다시 봄을 기다려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시기하여 그것을 기뻐할 이도 있겠지만 탄식의 입김으로 언 땅을 녹여 피워 놓을 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습니다
계간『문학의 오늘』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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