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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경 시인 / 빗방울은 몇 겹의 하늘을 깨고 달아나는지
그런 걸 뭐하러 세어두고 있겠어, 당신은 꿈에서도 폭우가 내린다는 사실을 모르나봐요, 창틀을 베고 누운 당신도 닫힌 서랍보다 늦게 눅눅해지는데
궁금해 그런 날의 당신은 그림자 대신 검은 석유를 품고 다녔는지
그런 날의 빗방울에게서 풍경의 심장이 뚝뚝 떨어져 나갈 때 벌려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는지
새벽의 혀를 길게 베어 문 촛불처럼 가장 빨리 죽는 건 악몽이라 믿으며
밤새 얼얼하게 녹아내리는 것들은 모두 내일의 미아가 되어버리기를
품, 이라 발음하면 옅어진 등불에 팔다리가 생겼는지
촛농이 굳어버린 하늘을 정면으로 마주치며 빛에 익사하길 바랐다
상처투성이의 손금을 털어내려고 손바닥을 자꾸만 흔들어도
온통 웅덩이였다 모르는 사람의 초상을 여기저기 그리고 다녔다
광주일보 2020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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