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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건화 시인 / 구름부족에 들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7.

김건화 시인 / 구름부족에 들다

 

 

새의 눈으로 허공의 지문을 읽는다

 

한때 비바람과의 공모에 눈이 멀어

목까지 채운 내 탐욕의 단추

여여한 구름 앞에서 비겁해졌다

 

고도를 높인 하늘에 자작나무를 세워

무지게를 걸까

 

당신이 보낸 전령사 안개의 눈에

비문으로 새겨 넣을 구름부족의 가계도는

두드린다고 열리는 문이 아니다

 

누군가 호명해주어야 열리는 등용문

 

은유의 레일 위에서

화려한 수사의 질척거림으로

그대 영혼 훔치겠다고 밀고 당기는 일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한다

 

파란 많은 몽상가 당신 생에 끼어들어

위태로운 풍문으로 흩어질 순 없어

오리무중 구름의 배후에

나, 이제 양떼를 풀어 놓아야겠다

 

날아다니는 생각의 섬, 새도

우울의 습기로 번지는 안개도

구름부족의 일가가 된다

 

 


 

 

김건화 시인 / 도화를 깨우다

 

 

봄날 여느 나무

환하게 지는 꽃잎에

열매 맺지 못하는 복숭아나무

엄지발톱만 부풀어 올랐다

 

겹겹 동여맨 꽃잎 열어 만개할

화산 같은 내 안의 도화는

어찌 깨울까

 

호랑나비는 꽃감옥에 들어

소식 감감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꽃몸살을 어쩌랴

 

기다림에 아려오는 명치끝

꿀샘 탐하는 벌새

수시로 날아들어도

허울만 복숭아나무일 뿐

몸속 도화는 물컹물컹 짓무른다

 

불어온 실바람에 복사뼈 자리

진물은 찔끔찔금

지나가는 개미를 가둘 뿐

내 안의 도화는 잠들지 않는다

 

그대여 더는 꽃망울 움츠리지 않게

달그림자로 숨어들어

꽃망울 활짝 터트려주오

 

-시집 『손톱의 진화』 2019, 북랜드

 

 


 

김건화 시인

경북 상주에서 출생, 2016년 《시와 경계》로 등단. 시집 <손톱의 진화> 형상시인선, 북랜드, 2020. 형상시 문학회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동서문학상, 산림문화공모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