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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권 시인 / 블랙타임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7.

김권 시인 / 블랙타임

 

 

  카메라를 손에 매고 블랙 커피숍으로 간다 버스 를 타고 암실에 갇힌 날들이 멀미를 한다 누군가 뛰어나올 것 같아 버리지 못하고 손끝에서 재롱을 피우고 미열을 앓 는 밤은 날을 지새주던 애물인데 어둠이 새는 저녁이 되면 셀프타이머는 고장이 난 다 고장 나고 고치는 나날이 내가 살아가는 공식  언제부터 어둠을 잊고 사는지 잊는 것은 좋은 것인 지도 모른다 나의 손발은 어두워진지 오래 어두운 기억 속에 잠든 그림자를 흔들어 깨우며 낡은 카메라를 손목에 매고 다닌다

 

 


 

 

김권 시인 / 하늘 공방

 

 

옥상에 숨겨둔 말을 해줄까

 

속병을 앓는 물탱크도 빛을 잃은 광고탑도 아직 낮인데 잠들어 있어

 

카톡이 모여들어 연필로 그린 말이 사라지려고 하지 지우개로 지우는 여기는 펜으로 새기고 천 개의 하늘이 흐르지 보이지 않게 비가 지나가고

 

철없이 나는 가끔 기러기처럼 떨어지는 상상을 해 나를 내려다 보곤 하지

흩어진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잠깐, 말이 있어요 옥상으로 오세요

소리 없이 소문이 자라나고 있어요

깨어나지 못하는 옥상은

어두워지기 전에 가두어야 해요 낮잠에서

 

공방이 사라지고

유리조각 몇 개 나뒹구는 빛투성이야 여기는

이미 고소공포가 시작 되었어

 

 


 

 

김권 시인 / 북쪽에 살아요

 

 

북쪽 끝에서 저녁이 몰려온다 동은 갑자기 쏟아 오르지 그는 바다에 가고 싶다고 몇 달을 누워서 시력을 잃고 우리는 곁에서 하얗게 일어나는 근심을 털어 내거나 굳은 각질을 벗겨내고 그가 북쪽을 떠나 그의 나라로 가자 그의 금빛 만년필도 빛을 잃고 마지막까지 그를 지켜준 하얀 시계의 남은 시간을 그의 집으로 보냈지 북쪽의 산들은 반만년 쯤 끌어안거나 손끝에서 아득히 우러르거나 산들이 음악 소리를 내고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가방에 현악기 하나쯤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여름이 사라졌는데도 여기는 밤이면 검은 공기들이 몰려와 꿈이 까맣다 밤과 아침 사이에 길고 어두운 밤을 견딘 북쪽의 산들이 야뇨증을 앓곤 했다 해가 길어지고 첫 버스에 숨겼던 지난겨울 구겨진 어둠이 깨어나고 아침빛이 젖은 밤을 말리고 있다

 

 


 

 

김권 시인 / 검은 우체국

 

 

저녁과 아침에 우체국 앞을 지난다 이야기들이 문장이 되어 잠든다 날마다 빛에 깨지는 유리창만큼 얇은 우표를 붙이고 돌아와 편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커튼이 내려진 검은 우체국에 잠든 나날들

 

남쪽을 바라보며 산다 봄바람이 북으로 불어온다 남쪽의 따뜻한 바람은 오래전에 잠든 안나를 썩어 냄새나게 하고 불빛으로 야산에 사그라지게 하고

 

나는 북쪽에 산다

너의 긴 팔다리와 하얀 얼굴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땀 냄새를 풍겨주었으면

 

동그랗게 몸을 누이고 나는 몇 날 며칠 오지 않는 나의 편지를 기다린다

 

아침저녁 유리가 검은 우체국으로 간다

 

 


 

김권 시인

전남 장성에서 출생. 2018년 《시와 세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