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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열 시인 / 개구리울음
콜라병 속에는 개구리가 산다 동네 구멍가게 선반 위나 우리 집 냉장고 속에 조용히 웅크려 있는 알들 저 캄캄한 콜라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놈들이 숨죽여 살고 있다 외지에서 들어온 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암살자처럼 물속에 숨어 있다 놈들은 서서히 우리 뼈를 갉아 먹고 있다 뻥! 무심코 병뚜껑을 따고 함부로 컵에 따르자 알을 깨고 뛰어오르는 울음소리 손등을 타고 오소소 울음이 돋고 토도독 입속에서 싸하게 울음이 튄다 오싹한 울음의 독이 온몸으로 퍼져가고 있다
- 시집 「콜라병 속에는 개구리가 산다」 전문 -92페이지
김근열 시인 /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때
구죽죽 비 내리는 날 옆집 할머니의 밤은 노숙 같아서 유리창은 캄캄하고 축축하다
비에 젖는 저녁 뒤꼍 비닐하우스는 부추꽃으로 운다
축축해진 발목은 무거워진 골목을 거느리고 비소리는 웅얼거리는 혼잣말이라서 설웁다
비바람이 강하게 이마에 부딪쳐 오는데 지난 일들이 추억이 될 수 없었지
고양이 울음이 비에 젖어 흐르던 날 여든 넘기신 인숙이 할머니 흙으로 가셨다
어머니가 수시로 열고 닫던 창의 표정이 갑자기 사라졌다 창문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익사했다고 흰 머리카락 뒷모습만 창문처럼 훔쳐보신다
거울 속에서 거울만 바라보는 당신 난데없이 쏟아지는 빗방울들이‘ 당연한 풍경이 아닐 때 검푸른 창 하나가 또 굳게 닫혀버리리
김근열 시인 / 파밭
파밭에 앉아 파를 가만히 바라보면 파 음계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손가락으로 툭 튕기면 파 바람이 휙 지나가도 파 비가 내리쳐도 파 소리가 날 것만 같다
파 끝을 모두 잘라내고 잘라낸 대롱 끝에 입을 오므려 후-욱 불면 파파파파파파파 파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올 것만 같다
우울하고 슬픈 날엔 파밭에 앉아 그가 꼿꼿이 서서 하라는 대로 파-아 하고 큰 목소리로 한번 내질러봐라 콧등이 매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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