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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효 시인 / 떨어지는 것은 눈부시다
1 떨어지는 것이 눈부신 까닭은 쓸쓸한 저녁이 있기 때문이다
화들짝 피었던 영산홍 꽃잎이 그림자를 지우며 지상으로 곤두박질 칠 때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햇빛 속으로 사라질 때 가을걷이를 끝낸 논바닥에 한 움큼의 이삭이 노을 속에서 혼자 젖고 있을 때
2 구겨진 손수건 같은 나뭇잎 한 장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심히 스쳐간 네 눈빛이 보일 듯 말 듯 너는 이따금씩 가물가물 다가와 움켜쥔 손을 그만 놓으라 한다 제 손을 놓아버린 나무들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내 몸 속의 푸른 상처,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마저 내려놓는다
- 시와 시학 2005년 포엠토피아 신인당선작
곽경효 시인 / 갑골문자
바닷가 모래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북의 등껍질 몸의 이미지는 사라져 버리고 선명한 육각형의 무늬만 남아 있다 천천히 걸어온 삶의 흔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제 몸에 새긴 암호가 아닐는지 그 동안 바다도 땅도 아닌 다른 세상을 꿈꾸느라 한 생이 저무는 줄 몰랐다 보이지 않는 글자를 해독하려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 지금 모래 위를 걷고 있는 나와 모래 속에 박혀 있던 거북의 시간을 생각한다 살아있음과 죽음이 함께 뒹굴고 있는 절대불멸의 이 아득한 공간을 몸이 삶의 일부분이라면 소멸은 또 얼마나 오랜 것인가 끝내 뼈 한 벌의 무게로 빛나고 있는,
―《문학마당》2007.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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