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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곽경효 시인 / 떨어지는 것은 눈부시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0.

곽경효 시인 / 떨어지는 것은 눈부시다

 

 

1

떨어지는 것이 눈부신 까닭은

쓸쓸한 저녁이 있기 때문이다

 

화들짝 피었던 영산홍 꽃잎이

그림자를 지우며 지상으로 곤두박질 칠 때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햇빛 속으로 사라질 때

가을걷이를 끝낸 논바닥에 한 움큼의 이삭이

노을 속에서 혼자 젖고 있을 때

 

2

구겨진 손수건 같은 나뭇잎 한 장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심히 스쳐간 네 눈빛이 보일 듯 말 듯

너는 이따금씩 가물가물 다가와

움켜쥔 손을 그만 놓으라 한다

제 손을 놓아버린 나무들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내 몸 속의 푸른 상처,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마저 내려놓는다

 

- 시와 시학 2005년 포엠토피아 신인당선작

 

 


 

 

곽경효 시인 / 갑골문자

 

 

바닷가 모래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북의 등껍질

몸의 이미지는 사라져 버리고

선명한 육각형의 무늬만 남아 있다

천천히 걸어온 삶의 흔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제 몸에 새긴 암호가 아닐는지

그 동안

바다도 땅도 아닌 다른 세상을 꿈꾸느라

한 생이 저무는 줄 몰랐다

보이지 않는 글자를 해독하려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

지금 모래 위를 걷고 있는 나와

모래 속에 박혀 있던 거북의 시간을 생각한다

살아있음과 죽음이 함께 뒹굴고 있는

절대불멸의 이 아득한 공간을

몸이 삶의 일부분이라면

소멸은 또 얼마나 오랜 것인가

끝내 뼈 한 벌의 무게로 빛나고 있는,

 

―《문학마당》2007. 겨울호

 

 


 

곽경효 시인

전북 무주 출생. 2002년 『충남예술』신인상. 200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달의 정원이 있음. 현재 『천안여류시인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