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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혜영 시인 / 히야신스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1.

정혜영 시인 / 히야신스

 

 

새들이 지워진 하늘이 회색 캔버스로 놓여 있다 본 것에 매달리면 멀리 갈 수 없다 왜 그렇게 많은 꽃잎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가지에 매달려 있을까

 

서 있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이 각자 다른 저녁, 다른 꽃잎에 매달려 있다 생각이 꽃 피긴 하는 걸까 생각이 달콤한 독이 될 때까지 긴 목이 휘어지는 것도 모르면서 거기 목이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책상 위의 벽시계는 할아버지와 서 있는 사람들을 서성이게 하고 좌파와 우파를 386과 아나키스트들을 불러 모으고 내겐 아름다움이 필요해,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정원은 무성하게 자라나고 폭발 직전의 기억들을 키우고

 

어디선가 향기를 따라 날아온 벌레가 꽃잎을 건드린다 작은 사무실 책상 위의 조그만 플라스틱 화분이다

 

어둠에 젖은 형광등 아래 사람들이 저마다의 꽃잎을 떼어내려고 한다 그게 아름다움이라는 가정 아래서 넓은 정원과 말간 공기와 하얀 도자기 좀 더 다른 무엇을

 

아침은 기다란 목을 가져서 배가 고프다 저마다 다른 꽃잎이 반목으로 피어나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5월호 발표

 

 


 

정혜영 시인

2006년 《서정시학》 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