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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분홍 시인 / 화살표는 악어가 되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1.

김분홍 시인 / 화살표는 악어가 되고

 

 

  바게트에서 바리케이드까지 마그마로 만든 빵을 주세요

 

  악어는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누워 있지

  머리를 조아리고 매복 중인 화살표는 책동할 뿐 본성을 드러내지 않지

 

  악어가 매복한 바리케이드는 늪

 

  광화문 사거리에서 차들은 악어의 입 모양을 따라 움직이고

  나는 화살이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지

 

  적신호에는

  먼저 떠나간 속도가 있고 떠나야 할 속도가 없지

 

  후진만 있고 직진이 없는

  녹아내리는 회중시계가 매복 중인 악어를 발견하겠지

 

  속도의 나들목에서

  화살표는 악어가 되어서 닥치는 대로 통째로 삼켜 버리겠지

 

  늪처럼 바게트에서 바리케이드까지 다 먹어 치우겠어

 

  리허설이 없는 바닥

  매복은 생존이지

 

* 녹아내리는 회중시계: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

 

 -시집「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중

 

 


 

 

김분홍 시인 / 호수의 입

 

 

호수는 한 번도 제 입을 연 적이 없지

호수는 분수 상상에서 출발해

내가 의뭉해서 돌팔매질을 당하면서까지 침묵하는 건 아니야

호수의 풍경으로 입주한 분수에게

옥수수를 주문했더니 팝콘이 터져 나오고

터진 치맛단을 꿰매 줄 소금쟁이를 주문했더니

젊은 아버지 얼굴이 굴러 떨어졌지

바람이 기록한 어떤 가족사가 엘피판처럼 돌아가는 호수

비밀을 채우고 있는 너를 자물쇠라고 부를게

목구멍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분수

우리 식구 목구멍 때문에

당신 얼굴에 침 뱉는 굴욕을 참으며 한직을 떠돌던 아버지

분수를 모르는 분수가

호수의 백조가 되겠다면 그건

호수를 뒤집겠다는 불온한 마음이 깔린 거야

잘못 뒤집으면 무덤이 되겠지만

반전의 묘미는 뒤집기

현란한 몸짓으로 나를 비우겠다는 생각은 금물이야

나는 술잔처럼

비워지고 싶을 때 비워지고 비워지다 보면 채워지지

저 밑바닥의 비밀을 깔고 앉은 수련

재잘 대지 말고

제발 입 좀 닥쳐 줄래

내가 입을 열면 세상이 뒤집어져

 

 


 

김분홍 시인

충남 천안에서 출생.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파란, 2020)가 있음. 2019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