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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시인 / 다만 저 집의 고독은
저 집은 자정에 듣는 목소리 같다 첫 단추를 끄르기 위해 고독은 잃을 게 없다 가령 심장을 움켜쥐는 돌발적인 질병도 있겠으나 더운물의 욕조에서 손목을 긋거나 비싼 넥타이로 목을 맨 채 의자에 올라 확실하게 미끄러진다고 치자 이건 영혼의 일이 아니다 현관문과 지붕, 허파나 쓸개의 진실이 되어 보는 일 고독의 뼈와 살을 꺼내 다오 외쳐 보지만 당연하게도 고독은 사인이 될 수 없는 것 늦은 점심 후의 식곤증인 줄 알았다 믿지는 않았지만 대기업에 다니다 잠시 쉬고 있다는 돌멩이라도 던지면 와장창 깨져 버릴 것 같은 고독 조금쯤 취해 다녀온 공원이 그를 감싸는 껍질이었고 웃음이 터질 때까지 울어 보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본일 말고는 다 아는 고독이었으니 늙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지루해 다시 태어나도 여기가 항상 고비일 거야 달리 갈 곳이 없었으므로 갈 데까지 가 보자는 것일까 결국 소름 끼치게 잔혹한 복수란 이런 것일까 우울증에서 시작해 알코올 중독으로 끝나는 죽은 지 두 달이 다 되어도 냄새로만 발견되는 그런 집이 들것에 실려 나온다 아직 오지 않은 집이었고 기억에서 사라진 집이라고 하자 다만 여기까지가 자정이었다
계간《시인수첩》2018년 여름호
김관용 시인 / 딸들이 나가고 엄마는 고인돌이 되었나
숨을 쉬거나 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더라도 발작 같은 건 없을 겁니다 네 시에 책상을 들였고 여섯 시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샌드위치와 맥주를 마시고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보입니다 물살이 점점 거세집니다 하나의 필름에서 분광된 빛처럼 오분 전과 삼십 년 후가 갑작스럽게 동행합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므로 인간의 몸으로는 다시 들어갈 수 없는 방입니다 분명히 조금 전 거기서 나왔는데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습니다만 익숙한 이미지들을 안약 대신 넣고 눈물 흘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생각나지 않는 일들이 완벽한 인과가 되었고 그냥 편안해 보였습니다 빛이 새는 창문으로 밖에 나간 딸들이 돌아옵니다 수납장의 맨 아래 칸에 노트북을 집어넣고 열쇠로 잠그지는 않습니다 서로 얼굴을 비추어보며 화장을 지웁니다 침대에 걸터앉는 그 바위 곁 풀숲으로 다가오더니 귀뚜라미처럼 잠이 듭니다 심장이 뛰거나 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꿈속만 같습니다 그것은 아주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침 여덟 시에 전철을 타고 열 시에는 선원禪院에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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