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민영 시인 / 추석날 고향에 가서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3.

민영 시인 / 추석날 고향에 가서

 

 

들국화 핀골짜기 길을 오르다가구멍 뚫린 철도 하나를 보았다.총소리와 함성이 뒤섞이던삼십오년 전 그날이 철모의 임자는 쓰러졌을까?(들고 간 술 한 잔을그 아래 부어 놓고가을 제사를 지낸다.)이름 없이 죽은 전사의 넋이여그대가 어느 편 사람이었든상관하지 않으마!아, 가을빛 짙은 철원 평야억새풀 흐느끼는 옛 싸움터에오늘은 국경 없는 바람이 분다.

 

 


 

 

민영 시인 / 유사를 바라보며

 

 

내 마음 속의

푸른 연꽃은 시들고

검게 탄 줄거리와 구멍 뚫린

씨주머니만 남았습니다.

 

저 당홍빛 구름 위에

오롯이 자리하신 부처님

 

이몸이 떠나야 할

유사의 끝 보리수나무 그늘은

아직도 멀었습니까?

 

소리개 한마리

허공을 맴돕니다.

 

 


 

 

민영 시인 / 해지기 전의 사랑

 

 

해지기 전에

나 그대 보고 싶으면

산수유꽃 한 가지

귓등에 꽂고 찾아가리.

 

그대의 집 창문에는

황혼의 불빛 어른거리고

파도의 거친 숨결이

조약돌을 굴리리.

 

해지기 전에

나 그대 마음에 떠오르면

패랭이꽃 한 무더기

가슴에 안고 찾아가리.

 

그대와 나 사이에

모래톱이 솟을지라도

즈믄해의 사랑 그 꽃잎에

입술 대이려 찾아가리.

 

 


 

 

민영 시인 / 봄들에서

 

 

산벚꽃이 한창이야

 

높은 산에 눈 내린 것 같아.

 

가야 할 길이

 

십여 마장 더 남았지만,

 

이 눈부신 봄들에서

 

조금만 더 쉬어가야 할 것 같아.

 

괜찮겠지?

 

 


 

민영(閔暎) 시인

193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남. 1937년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 1945년 간도성 화룡현 명신소학교 5년 중퇴.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斷章』(1972), 『龍仁 지나는 길에』(1977), 『냉이를 캐며』(1983), 『엉겅퀴꽃』(1987), 『바람 부는 날』(1991), 『流沙를 바라보며』(1996) 등이 있음.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1983), 만해문학상(1991) 수상.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시분과위원장 역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 ㈜계몽사 편집위원. 독서신문 출판부 부장. ㈜학원사 편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