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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우희숙 시인 / 출가 1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1.

우희숙 시인 / 출가 1

 

 

 코끼리 피어싱처럼 장식한 여자를 보았다

 종양은 커지고 두개골 속은 비좁다

 

 피를 쫓는 모기의 울음이

 캄캄한 어둠을 뽀족한 바늘로 누비며 다가올 때

 혈관을 팽창시키던 나는

 피어싱 장식의 코끼리는 아니었을까

 

 벌이 화분으로 발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코아나무가 새나비이파리 귀로 우크렐레* 소리를 듣는 새벽

 그녀가 화장과 매니큐어를 지우고 귀걸이와 결혼반지 빼고 삭발을 한다

 바리캉은 코끼리 발소리를 내며 요란하다

 

 두려운 코끼리를 꺼내기 위해

 몸을 해체해 치장을 벗어 던지고

 거울 속 낯선 본색을 들여다보는

 이 고통스런 출가가

 그녀인지 코끼리인지

 알 수 없는 나는

 

 언젠가 곡두새벽에 백양사를 홀로 걸으며

 코끼리 장식인지도 모를 내가

 출가해 걸어 갈 고요를 봤다

 

* 작은 기타같이 생긴 4현 악기.

 

 


 

 

우희숙 시인 / 어떤 연료

 

 

텅 빈 속이 허기를 참는다

밥 한 덩이 대신

오늘도 몸을 연료로 쓰고 있다

햇살에 뼈에 붙은 근육들이 지글지글 탄다

벽난로 같은 위장에

마른 살 몇 개 피 태우며

말린 똥을 만지고 있는 저 아프리카 아이

제 살을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샛노란 허기를 채운다

 

 


 

 

우희숙 시인 / 꽃상여

 

 

남부시립요양원

한 사내가 중환자실에서 개화중이다

공사판을 떠돌다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지 십여 년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고

스스로 몸 한 번 뒤집을 수도 없어

등에 침대를 매달고 살아온 사내

눈 끔뻑일 때마다 뜨거운 욕창이

꽃망울 톡톡 터트린다

무슨 삶의 응결이

저리 붉은 살의 꽃들을 피워 냈는지

꼬리뼈를 드러낸 마른 엉덩이까지

누더기 누더기로 꽃 피웠다

사내는 등짝에 꽃등을 건다

사월 초파일 오색의 연등을 건다

진흙 같은 생이 피워낸

등가죽에 매달린 불멸의 시간들

세상 밖으로 환하게 내걸고 있다

 

 


 

 

우희숙 시인 / 꽃잎 두 장

 

 

목욕탕에서 오래된 아궁이를 들여다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활활 타오르거나 사그라뜨리며

점점 어두워졌을 비탈진 음부

습지를 잃어버리고 습지를 찾아

목욕탕 마루에 걸터앉은 검게 그을린 아궁이 하나

붉은 꽃물 다 버리고

섣달 그믐밤처럼 어둡고 쓸쓸하다

오랫동안 불 지피며

빗살무늬토기부터 민무늬토기까지

사랑의 미움의 열정의 절정의 아픔의 사람의

도자기들 빚고 구웠을 것이다

부숴버리고 싶은 유혹 견뎌냈을 것이다

견디는 내내 불구덩이가 키워 온

그녀의 얼굴 같은 검은 꽃, 저 소음순

‘똑’하고 모가지 꺾지 못하고

어느 날인가, 제 몸 불사를 아궁이 옆에서

불쏘시개로 쓰일 꽃잎 두 장으로 남아있다

 

 


 

 

우희숙 시인 / 비밀

 

 

  아들이 죽자 엄마는 울지도 못했다. 구천 떠돌다 허공 노숙자 될까 봐 엄마의 눈은 더 깊어만 갔다. 수목장 소나무 밑에서 책임져줄 이 많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며 두 손을 합장했다. 그 손은 삼키는 눈물이 스며 막 싹을 틔운 늙은 새싹처럼 고왔다.

 

  그날 이후 그녀의 눈물은 사라졌다 오랜 가뭄을 겪는 논바닥처럼 실핏줄이 드러나고 눈동자는 식지 않고 늘 뜨거웠다 그곳에선 매일 비밀스럽게 뭔가 굽는 냄새가 났다 아들이 생시에 좋아했던 사과이거나 생밤이거나 때로는 연꽃을 구워 내놨다

 

  엄마의 눈은 오븐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적당한 온도를 맞추느라 일시정지 되거나 사막의 달궈진 정오처럼 어석거렸지만 썩썩 비비며 깜박거리기만 할 뿐, 설거나 태우지 않을 요량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굽기에 알맞은 맞춤 온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구워진 것들은 툭툭 엄마의 눈 밖으로 나왔다

 

  우연이었을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비밀. 누군가의 눈에서 탐스럽게 구워져 나온 겹겹의 꽃이거나 열매. 내 품의 당신도 그저 누군가의 아픈 눈에서 툭툭 구워져 나온 우여곡절 많은 우연은 아닐런지

 

  구울 준비가 되었어요

 

  거리를 걷다 깜박깜박 대는 아들 앞세운 엄마의 눈동자 밖으로 합장한 두 손, 싹이 톡 불거져 나오고 슬픔과 기쁨을 반죽해 세상 먼 곳에서 잘 구워낸 밤 몇 알을, 그 누구도 이 비밀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우희숙 시인 / 분리불안장애*

-「소년, 소녀를 만나다」**

 

 

1

내 몸의 얼개는 처음부터 복잡했다

동굴안 많은 세포 돌기가 돌기를 깍지 낀 손들은

맞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XX***

 

그 자그마한 몸의 동굴에서

X가 X를 만난 건 우연일까

 

수십 년 동안 몸의 동굴 속에는

사람이 나와 나팔을 불며 시간을 알리는 장식시계처럼

한 달에 한번 나팔수가 나팔관을 불면 보름달이 떠올랐다

나팔수의 나팔 소리에 달은 붉은 궤도를 돌며 달무리를 만들었고

그 나팔 소리를 들은 사람은 몸 밖으로 튀어 나왔다

 

XX

소년, 드디어 소녀를 만나다

 

2

우리는 헤어지고 만나는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XX는 X와 X로 나눠져 자주 싸웠지만 갈라 세우지는 못했다

 

3

그동안 50년이 지났다

400여개의 달이 뜨고 진 동굴은 자동폐쇄경로를 밟는다

그곳으로 스며든 피부를 매끄럽게 하던 지하 온천수도

언젠가 요금체납으로 끊긴 수돗물처럼 당황스럽게 끊겼다

인간을 만들고자 동굴을 찾던 이의 발걸음도 차츰 머츰해졌다

동굴의 돌기들은 늙어 산성이 되고

맞잡아 깍지 낀 손들의 끊어진 마디들이 종유석처럼 부러진다

이제 생식기능을 상실한, 생리혈의 피비린내조차 나지 않는 그곳에는

제 3자인 박테리아가 점유한다

 

4

X와 X가 이별한다

나는 지금 갱년기 분리불안장애를 앓는다

떠나갈 채비를 서두르는 X에 X가 집착한다

손을 뿌리칠 때마다 물고 늘어지는 나는

늘어나는 인대와 골다공증의 통증에 시달린다

등에 불을 지르며 위협도 해 보지만 팽팽했던 얼굴은 번번히 탄력을 놓치고

초초한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너와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우리의 필연은 여기까지였을까

한 몸일 줄 알고 속아 살았던

X 와 X

 

미레이유가 죽자 알렉스가 품에 안고 운다

나는 두 몸이었던 우리였다

 

* 애착상대와 분리를 거부하는 현상

**영화 제목

***한 쌍의 성염색체로 XX는 여자를 의미함

 

 


 

우희숙 시인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0년《문학․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도시의 쥐』(문학․선, 2012)가 있음. 현재 『문학․선』주간, 삼성서울병원 병리검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