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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시인 / 소와 뻐꾹새 소리와 엄지발가락
등가죽이 툭 꺼진 소가 빵빵하게 배를 채우는 그 시간 동안 정강이가 시린 아이 하나 산새처럼 앉아 있지 오도마니 무릎을 감싸안고 내려다보고 있지
고무신 뚫고 나온 하얀 발가락 빈 뱃속 가득 뻐꾹새 울어 하늘 명치끝에 숨이 닿게 울어 지친 해도 꼬박 산을 넘는다
달개비 푸른 꽃으로 밤이 피어나 먼 산마을 오르는 저녁 연기를 우리 소는 되새김질로 휘휘 감아 삼키고 어머니 몸에선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났다 등록금 봉투에서도 났다
포마드 향내를 풍기는 선생님 책상 위에 어머니의 눅눅한 돈이 든 봉투를 올려 놓고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밤늦게 녹초가 된 어머니 곁에 누우면 살아서 튀어 오르는 싱싱한 갯비린내가 우리 육남매 홑이불이 되어 덮였다
<시와 시학> 시 당선작.
이경 시인 / 바람소리
누가 이 밤에 흰 생 무를 썰고 있네 시간의 발자국 소리 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무쇠 식칼 시퍼런 날 아래 한 절벽이 잘려나가고 또 한 절벽이 하얗게 눕는다 지금처럼 그 때도 무서운 역병이 돌아 수상한 바람이 앞발톱을 세우고 어린 것들 이마 위를 어슬렁거리는 밤에 어머니는 무쇠 식칼로 생 무를 썰고 나는 연필심에 침을 묻혀 숙제를 했다 무엇에 놀라기라도 하듯 등잔불이 쿨럭이며 수염을 길게 그을면 우리는 긴 역사책 같은 바람 소리를 읽었네 어둠 속에서도 한 발 삐끗하는 법 없이 거두절미 단도직입 어머니 생 무 자르는 칼도마 소리에 바람도 문밖에서 기세가 꺾이고 병마도 발꿈치 들고 저만치 비켜 갔어라 병마도 발꿈치 들고 저만치 비켜 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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