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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곽문연 시인 / 떡갈나무 내 이파리 그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3.

곽문연 시인 / 떡갈나무 내 이파리 그늘

 

 

따가운 햇살에 해바라기씨 구워지는

더위 속 팽팽하게 차오르는 땀방울에

들러붙는 머리카락

 

네 무릎 위 짧은 포플린 치마보다 시원한

내 바람으로 네 이마를 닦아라

내가 너의 땀을 식히는 바람일 수 있다면

 

나는 뜨거운 숨 딱딱한 턱에 닿는 삼복의 강

굽이마다 휘돌아

저 거친 산맥을 달디달게 넘겠다

 

아이야

 

마른 내 손을 열어 보아라

네가 나로부터 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로부터 피어나는 선명한 새순

태양의 중심에 이르러도 싱싱하겠다.

 

 


 

 

곽문연 시인 / 가방의 본색

 

 

분신처럼 따라오던 가방이 사라졌다

 

바이킹들의 흔적을 찾아

발칸 반도를 누빈 크루즈 여행기간 내내

함께 백야의 정취에 젖었는데,

 

이건 미필적 고의, 탈선한 가방의 의도가 궁금하다

필경 은밀한 연유가 있을 것이다

허름한 청바지와 티셔츠

발 편한 운동화와 소형 라디오 강장제와 비타민

시의 종자들이 들어 있는 가방의 실종

 

긴 여정이 기록된 메모들이 돌고 돌아

몇몇 나라를 며칠 더 순례하고 돌아왔다

땀이 밴 청바지와

배터리가 소모된 라디오 앞에서 그의 본색이 드러났다

 

여정에 대한 반역이며 용감한 반란들

다시 돌아온 가방 속

해해년년 피던 진달래 꽃잎 한 장 함부로 떼지 못한

사내가

돌아오고 싶지 않은 본색의 날개를 접고 앉아 있다.

 

 


 

 

곽문연 시인 / 바람꽃 변증법

 

 

해변을 타고 오르면 바람의 혀가 보인다

 

말이 되기 전

초봄에 가장 먼저 피는 말의 새순이다

 

잔설을 밀고 오르는 의문부호들

짭조름한 봄의 심지 속

 

불꽃이 튄다

갯바람을 빚어 단단한 씨앗으로

 

말이 되지 마라

소리가 되지 마라

산과 바다를 잇는

바람의 자음모음들

 

봄눈 녹이고

피를 돌게 하는 삼월

미완의 말에게 보내는 전언이다.

 

 


 

곽문연 시인

충북 영동에서 출생. 춘천대학 상학과 졸업. 중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고대 경영대학원. 서울대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 2003년《문학마을》로 등단. 시집으로『단단한 침묵』이 있음. 한국시인협회 회원. 다층사람들 편집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