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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철 시인 / 나의 시(詩)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6.

박철 시인 / 나의 시(詩)

 

 

평생 벗어나지 못한 지옥 중의 하나는

저체중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되지 않았다

 

주렴 없이 곁을 떠난 이들의 몇은

나와 함께 하다가는 끝내 견디지 못할

비만 때문이었다

 

 


 

 

박철 시인 / 악연

 

 

언제나 아픕니다

아내의 투병은 나를 향한 것이고

나의 투병은 아내의 과녁으로 날아갑니다

습관처럼 날 선 말이 쇳소리를 낼 때마다

던진 말대로 둘 중의 하나만 악연이면

같이 못 삽니다

그러나 둘 다 악연이면 참고 삽니다

세상은 그러려니 하고 살 만합니다

울다가 세금 내러 은행엘 가고

은행 가다 이웃 만나 깍듯이 해바라기 되어

인사 나누며 웃습니다

 

해를 쫓는 달을 보셨나요

사랑하진 않아도 버리지 못합니다

뜨뜻미지근한 안타까움이 조금 있다고는 할까

누가 먼저 버려 버려져

해와 달 그 사이 같은 천벌을 받나

그걸 기다리며 그냥 세월 다 보냅니다

어쩝니까 그러다 빈터에 둘뿐인 것을

 

부슬비 오는 어느 가을날

손잡고 내지에 드는 것도 둘뿐일 텐데

악연이죠

 

박철,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창비, 2018, 40~41쪽

 

 


 

 

박철 시인 / 연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번

돌아올 때까지

 

 


 

박철 시인

1960년 서울에서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1987년 《창작과 비평》에 시 〈김포〉 외 14편이 추천되어 시인으로, 1997년 《현대문학》에 단편 〈조국에 드리는 탑〉이 추천되어 소설가로 활동 中. 저서로는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너무 멀리 걸어왔다』, 『새의 全部』,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험준한 사랑』,『사랑을 쓰다』,『불을 지펴야겠다』와 소설로는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와  꽁트집 『벗어제끼는 날들』, 어린이를 위한 책 『옹고집전』, 『선비 한생의 용궁답사기』, 『김포아이들』등이 있음. 11회 천상병시상, 12회 백석문학상 수상, 2019. 제16회 이육사 시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