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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영연 시인 / 붓의 미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7.

신영연 시인 / 붓의 미각

 

 

돌아오지 마라

뒤돌아섰던 안녕아 속도야

너를 잊지 않았다 그러니 돌아보지 마라

 

가슴을 부여잡고, 털어도털어도 가시지 않는, 그를 만난 적 있다

초가집에 앉아 먹물을 갈 때였는데 철조망을 두른 울타리를 넘어 가시같은 외로움이 들어오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였다

갈비뼈 하나 옆구리서 빼내들고 활을 쏘듯 농을 치듯 허공을 소곡 한다

고단한 몸을 뉘였고 허기진 날이 밝았다 그는 온데 간데 없고 초가집을 에둘러 나무 몇 그루 서 있었으니

 

그리움은 푸르러서 한라의 돌기둥도 까닭없이 멍이 들고

일자 몸 가시의 끝이라도 잎으로 돋아나며 흐를테다 열두 달아

 

붓의 속도는 짙고 혹은 옅은 마음결에 두고두고 푸르를 심장 하나 심었으리

보름녁 소나무가지 끝에 붉게 타는 저녁놀, 그대 잠시 쉬었다 가는 숨결이라 여기리다

 

 


 

 

신영연 시인 / 바람 의자

 

 

울음이 쉬어가는 공원

가을양말을 신고 그곳에 오래 머문 적 있다

 

소로록 소로록 그대의 온도로 바람이 분다 해와 달과 공기와 나뭇잎과,

바람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솔모가 언덕을 오르며 뒤를 돌아다 봤다

일용할 양식을 입에 물었으므로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천상의 소리인듯 우리의 대화는 또렷하지 않았다

 

어느 대목이 울음에 가 닿았는지 바람의자에 앉아 있던 나뭇잎도 열매들도 훌쩍훌쩍 븕어졌다 목이 쉰 바람이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대의 손길인가 오후가 우두커니 와 있었다 마다하는 노을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햇살 한 줌 챙기려니 화들짝,

가을이 덮친다

 

 


 

신영연 시인

충남 부여출생. 2008년 계간 《시에》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안녕이 저만치 걸어가네』가 있음. 한남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