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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자윤 시인 / 풍냐동굴 늪 근처에서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7.

2019년9월<시문학>신인우수작품상

신자윤 시인 / 풍냐동굴 늪 근처에서

 

 

풍냐동국의 밀림박쥐 포음파는

슬픔이 터진 첫 번째 발음이다

 

나는 동굴 늪 근처에서

밀림박쥐의

날갯짓 부딪치는 소리를 스캔한다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짐승의 슬픈 눈물울에 대한

스펙트럼 효과

 

수련밭 바위 틈새에

진황색 혈류로 내려앉는 놀

 

나는 둑 언저리 놀빛을 괴고 앉아

자음을 모의하다 추방된

직립의 원시 남자를 연모한다

 

대각선으로 쏟아지는 위성 아래

동굴 밖 그 남자와

나는 한 낱말로 소통한다

 

그 남자는 생명력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해묻이의 주춧돌에 엉등이를 문지르며

걸음마를 떼었을 것이다

 

아직 혈흔이 끈적거리는

짐승 닮은 그 등껍질의 온기

 

그 원시 남자의 넓은 어깨에 내렸던

수만 년의 한기가

스카프처럼 내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덫에 걸려 멍든 발목으로

겅중겅중 언덕을 뛰어다니는 겁먹은 암노루

 

나는 반쯤 감긴 눈을 뜨고

내 전생의 기록을 더듬는다

 

 


 

 

신자윤 시인 / 잃어버린 지우개

 

 

지상을 덮친 폭설

12월의 길목이 갇혀버렸다

 

아차산 등산로 입구

 

돌진한 소용돌이에

비명 뚫고 인터넷 뉴스에 뜬 파문

 

분홍신 한 짝

절룩거리며

주인과 함께 사라진다

 

사시사철 포갤 수 없는 다리

진통제에 잠을 미룬 밤

 

아무리 이불을 당겨도

마디마디 시린 한기

 

흩어진 뼈들의 삭제된 통증이

뼈 밖에서 웅성거린다

 

다시는 바닥에 닿지 않는

종아리 밑 뼈들의 절규

 

지나온 거리의 부산물이

뚜벅뚜벅

여기저기서 기웃거린다

 

꽃병과 꽃의 관계를 아는

나목의 움트는 소리

 

분홍신 바람 짚고

나이테 맨 꼭대기에 서 있다

 

 


 

 

신자윤 시인 / 마지막 마궈토

 

 

히말라야 동쪽

인디언불루빛 하늘이

 

천지창조의 신화를 새롭게

펼쳐 보이던 날

 

남북으로 길게 눈 덮인 산을 가르는

횡단산맥 사이

날짐승과 쥐새끼만이 통하는 길

 

말과

마방 심장을 실은 외줄이

간당간당

 

관대하지 않은 협곡과

일대일 사투를 벌인다

 

땀방울에 절궈진 살갗에

버섯구름이 피어나도

 

스촨성의 마방들은

건들대는 바람에 무릎 꿇지 않는다

 

한 번 나서면

소금사막이 되어서야

되돌아갈 수 있는 고향길

 

누가 처음 차마고도를 길이라 했는지

마궈토와 히말라야

한 치의 양보 없이

마주보며 줄을 당긴다

 

스촨성의 잎사귀와

티벳 말고기의 팽팽한 흥정에는

수천 년이 직통한 냄새가 흐른다

 

옥룡설산 아릿마을에

정신없이 쏯아져 들어온 문명의 바람이

 

지구상에서 한 번도 들춰진 적 없는

처녀적 걸을걸이 잔고를 유린하고 있다

 

*마궈토 : 차마고도를 오가며 차와 말을 교역하던 마방의 우두머리

 

 


 

신자윤 시인

2019년 《시문학》 신인문학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