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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승림 시인 / 그래서, 나는 발목입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8.

양승림 시인 / 그래서, 나는 발목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제한속도가 막 넘어가는 순간

 

차체와

몸과

그리고 그 속도를 붙잡고 있던

내 광기마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악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던

발목만

남았다고 가정했을 때,

 

그렇다면 과연

그 발목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소멸은 곧 발목이라는

황당한 소문이 떠도는 거 같습니다

 

오늘도 나는

이 지루한 일상을 디디고

제한구역을 넘어갑니다

 

정말이지 발목이 시큰시큰하게,

 

돌아올 연료는

가급적 넣지 않습니다

 

간단한 소멸은

편도로도 충분합니다

 

2010년 「시와세계」 등단

 

 


 

 

양승림 시인 / 지금은 조용히 기다려야 할 때

 

 

옛날엔 집에서 콩나물을

직접 길러 먹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시루 바닥에

검은 재를 깔고

아침저녁으로 따박따박 물도 주고

 

그러나 우리 집 콩나물은 항상

대가리가 퍼랬다

 

나는 늘 시루 안이 궁금했고,

수시로 검은 보자기를 들추고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대가리가 퍼래진 콩나물은

모두 버려야 한다

비려서 못 먹는다

 

지금은 조용히 기다려야 할 때,

 

시루 안이 아무리 궁금해도

노오란 콩나물 대가리처럼

공손히 두 손 모으고,

조용히 어둠을 견뎌야 할 때

 

 


 

양승림 시인

1961년 춘천에서 출생, 강원대학교 졸업.  2010년 《시와 세계》 신인상 시부문에 〈철학은 돼지다〉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 현재 '바람'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