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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희 시인 / 가난한 시인의 노래
늙은 어부처럼 지혜로운 시인은 오래 깁고 기운 언어의 그물을 던져 새벽 바다에 펄떡이는 시어(詩語)를 풍성하게 거두어들인다 나는 변변한 그물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해 돋는 바다에 반짝이는 언어(言語)떼를 욕심낸 적 있으나 솟구쳐 오르는 한 마리 금어(金語)를 꿈꾸기도 했으나 저녁 바다에 눈시울 붉어지는 노을이 흐르니 내 서툰 욕망으로 엮은 그물을 걷고 가난한 빈 배를 위해 바다가 펼치는 무욕의 그 노래를 따라 부르리라
이양희 시인 / 마침내
마침내 담쟁이덩굴은 벽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맨 처음에 한 잎의 어린 손을 내밀어 말을 걸었을 때 벽은 어느 때보다 높이 솟아올랐지만 덩굴손으로 기어오르는 아찔한 세월을 견디는 동안 벽은 깎아지른 마음을 한 칸씩 내어주더니 지난 밤 달빛 아래 꽃이 흔들릴 때 남은 마음을 마저 내어주고 뒤로 물러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다 마주 선 벽에게 말을 건네며 걸어오는 벽에게 손을 흔들며 마침내 담쟁이덩굴의 마음을 얻었다 마침내 담쟁이덩굴이 되었다
ㅡ시집 『비스듬히 서 있는 당신』(효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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