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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 시인 / 굿 모닝
아침 일찍 일어나면 화장실로 먼저 간다 강추위에 안녕한지 살피러 간다 물을 내리니, 쏴! 굿 모닝? 하니 굿 모닝! 하네
늙은 아내 잠자는 안방을 살짝 열어본다 문 여는 소리에 홱 돌아눕는다 꿈나라 잠보! 굿 모닝? 해도 굿 모닝! 안 하네
오탁번 시인 / 연애
자가운전하는 예쁜 여자가 내가 달리는 차선으로 얌체같이 끼어들기하고는 차창 밖으로 흔드는 하얀 손을 보면 무 베어먹듯 그냥 한 입 물고 싶다 눈 마주치면 눈흘레나 하고 싶다 뒤에서 들이받을 생각 아예 말고 살가운 접촉사고나 내고 싶다 ㅡ지금쯤 고향의 억새밭 물녘에서는 무지개도 뛰어넘을 만한 힘센 황소가 녈비에 황금빛 털이 간지럽겠디
밤길에 잽싸게 끼어들기하고는 점멸등 깜박이며 달아나는 차를 보면 반딧불이가 반딧반딧 짝을 찾는 것 같다 나도 한 마리 반딧불이가 되어 하늬바람에 공중제비하고 싶다 홰친홰친하는 낚싯대 펴고 동동거리는 형광찌 불빛따라 얄미운 붕어 한 마리 잡고 싶다 ㅡ지금쯤 고향 집 지붕에는 하양 박꽃이 환하게 피어 은하수까지 다 물들이겠다
오탁번 시인 / 우리 시대의 시창작론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 껄껄껄 웃으면서 악수하고 이데올로기다 모더니즘이다 하며 적당히 분바르고 개칠도 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똥끝타게 쏘다니면 된다 똥냄새도 안 나는 걸레냄새 나는 방귀나 뀌면서 그냥저냥 살아가면 된다 된장에 풋고추 찍어 보리밥 먹고 뻥뻥 뀌어대는 우리네 방귀야말로 얼마나 똥냄새가 기분 좋게 났던가 이 따위 처억에 젖어서도 안 된다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옛마을이나 개불알꽃에 대한 명상도 아예 엄두 내지 말아야 한다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 걸레처럼 살면서 깃발 같은 시를 쓰는 척하면 된다 걸레도 양잿물에 된통 빨아서 풀먹여 다림질하면 깃발이 된다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된다
-벙그는 난초꽃의 고요 앞에서 『우리 시대의 시창작론』을 쓰고 있을 때 내 마빡에서 별안간 '네 이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만 연필이 뚝 부러졌다
오탁번 시인 / 폭설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오탁번 시인 / 토요일 오후
토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딸과 함께 베란다의 행운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일 세상사람 저마다 눈을 뜨고 아주 바쁘고 부산스럽게 몸치장 예쁘게 하네 하루일 하루공부 다 끝내고 중고생 관람가 못된 장면은 가위질한 그저 알맞게 재미난 영화 팝콘이나 먹으며 구경하러 가는 것일까 한주일의 일과 추억을 파라솔 접듯 조그맣게 접어서 가볍게 들고 한강 시민공원으로 나가는 것일까 매일 물을 뿌려 주어야 싱싱한 잎을 자랑하는 베란다의 행운목이 펼쳐 주는 손바닥만큼씩한 행복 토요일 오후의 우리집은 온통 행복뿐이네 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며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 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나?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난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모두다 예쁘게 몸치장을 하면서 춤추고 있었네 구슬이나? 불알이나? 딸의 어릴 적 질문법에 대하여 아빠가 시를 하나 써야겠다니까 여중 2학년은 아니 아니 아빠 저를 망신시킬 작정이세요? 문법도 경어법도 딱 맞게 말하는 토요일 오후 모의고사를 열 문제나 틀리고도 행복하기만한 강남구에서 제일 예쁜 내 딸아 아이고 예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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